베트남 호치민시에 회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아들의 초대를 받아 하이퐁과 하롱베이를 다녀왔다. 호치민시는 몇 번 가봤으나 이 두 지역은 처음이어서 아이들처럼 자못 설렘이 일었다.
먼저 하이퐁 역사박물관에 들러 피 묻은 역사의 생생한 흔적을 둘러보고 근대사에서 열강의 침략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 이긴 베트남의 역사를 느껴보며 베트남 사람들에게서 우리의 독립 정신이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아가 민족의 생존은 힘이 좌우하며 그 힘의 원천은 강한 독립자존의 정신이라고 일러 주는 것 같다.
하이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즈항 사원(Du Hang Pagoda)'을 갔다. 아주 소박한 정문에 군복 같은 옷을 입고 앉아서 출입객을 통제하는 노인 몇 명이 있었다. 정식 입장료는 없었으나 그들은 베트남어를 모르는 우리에게 그들 말로 뭐라 말하며 '시주'를 바라는 투로 복전함 같은 데를 가리켰다. 우리는 얼마를 내야 하는지 영문을 몰라 주춤하고 있는데 그중 좌장인 듯한 분이 중국인이냐 홍콩인이냐 묻는 것 같아 한국이라 답했더니 갑자기 놀라는 투로 '오! 한국'하며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반가운 듯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더니 시주하지말고 그냥 들어가란다. 한국인을 그렇게 좋게 보고 환대하는 모습에 우리도 놀랐고 기분이 좋았다. 그 뒤로 그분은 우리 아이들에게 잘 익은 망고 2개를 갖다주고 또 무슨 과일을 더 주며 이뻐해 주며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대하듯 참 잘해주었다.
즈앙 사원 방문한 감동을 하나의 떨림으로 안고서 하롱베이로 향했다. 투안차우 국제여객항에는 수많은 유람선, 관광선, 크루즈선 등으로 부두를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선상 식사에다 동굴과 나룻배 체험을 하는 유람선을 탔다. 배는 여러 나라 사람으로 꽉 찼다. 안내원이 숙달된 듯 영어로 크게 설명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저 눈으로 보는 풍경이 다 들어오니 그리 들을 필요도 없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에 반타원형의 돌섬들이 한 폭의 동양화인 양 수도 없이 지나갔다. 그 돌섬들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졌고 수억 년 전에는 얕은 바닷속에 있었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라 또 수억 년의 침식과정을 거쳐 오늘과 같은 석회암 섬 군락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하롱베이의 잔잔한 바다에 배 띄워 기암 절경을 낚시라도 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동굴 답사와 나룻배 타보는 스릴을 맛본 후 돌섬 꼭대기에 관망정이 보이는 티톱 섬에 도착했다. 그 섬에는 웬 커다란 서양인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1962년 베트남 지도자 호치민과 소련의 우주비행사 게르만 티토프가 이 섬을 방문한 기념으로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옥에 티랄까 자연미가 생명인 하롱베이의 풍경에 좀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이퐁의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한국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이기도 했지만, 손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다. 메뉴도 한식이 주고 한국의 젊은 회사
직원들이 국내에서처럼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밝은 표정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특히 이곳은 수백 개의 한국계 기업과 협력업체가 진출해 있고 종업원만 해도 수십만에 이르며 하이퐁은 한국기업이 먹여 살린다니 참으로 뿌듯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만 단순한 애국심에서가 아니라 베트남만 해도 거리에 우리나라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고 우리 기업의 광고판이 널려있다. 세계가 K-컬쳐와 K-시리즈를 인정하고 우리가 그런 대접 받을 만큼 성장하고 있음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절로 솟는다.
베트남 즈항 사원에서 들은 그 "오! 한국"이란 소리가 세계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인정받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오직 실력과 근면으로 우리 한국인의 끈기로 우뚝 솟은 이상 우리는 계속 그런 지위를 확고히 해서 세계가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우리가 악수를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