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풍경

2026.05.21 14:48:35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지인의 집에 갔더니 병아리가 인공부화기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인공부화기를 이용해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제품이 인기라고 한다. 달걀을 부화기에 넣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것이다. 스무 개가 넘는 달걀을 넣어 부화시키는 중형 부화기도 있지만 서너 개 정도가 들어가는 미니 부화기가 초등학생들의 교육용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처음 부화기를 보았을 때는 정말 병아리가 태어날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부화한 병아리를 보니 신기함보다 묘한 허전함이 먼저 밀려왔다.

어렸을 적에는 시골집에서 닭을 많이 키웠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어미 닭이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켰고 그 병아리들이 자라 다시 알을 낳고 새 생명을 품어 냈다. 뒤꼍 굴뚝 옆에는 아버지가 볏짚으로 커다란 둥우리를 매달아 놓으셨다. 달걀을 모아 둥우리 속에 넣어 두면 어미 닭이 스무날 남짓 정성껏 품어 주었다. 그렇게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미처 깨어나지 못한 병아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깨어나 따뜻한 봄날이면 노란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따라 종종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니곤 했다. 우리는 왕겨에 연한 풀을 잘게 썰어 물과 섞어 모이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가끔은 좁쌀을 주기도 했다. 물그릇도 따로 마련해 병아리들을 살뜰히 돌봤다.

달걀이 모이면 아버지는 볏짚으로 열 개씩 꾸러미를 묶어 오일장이 서는 날 장에 내다 파셨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집에 필요한 생필품과 사탕을 사 오셨다. 아버지가 장에 가신 날이면 동구 밖을 열두 번도 더 내다보며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갔던 기억도 새롭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자연과 맞닿아 있었다. 못자리하는 철이면 소가 쟁기를 끌어 논을 갈았고 아이들은 소 꼴을 먹이러 들판으로 끌고 다녔다. 풀밭에 소를 매어 두고 냇가에 가서 멱을 감기도 했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들판과 냇가, 산과 논이 모두 우리의 놀이터였다.

지금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일 것이다. 옛날 방식의 삶을 무조건 그리워하거나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생명의 이치를 몸으로 배우던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요즘 아이들은 닭이 어떻게 알을 낳고 병아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직접 보기보다 기계 속에서 병아리가 부화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며 자란다. 물론 그것 또한 시대의 변화이고 배움의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단지 관찰의 대상만은 아니다. 어미 닭의 따뜻한 품속에서 알이 깨어나고 삐악거리며 어미를 따라다니던 병아리의 모습 속에는 기다림과 돌봄 그리고 생명을 품어 내는 자연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자연 속에서 계절을 느끼고 흙냄새를 맡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그 속에서 사람의 마음 또한 같이 자라났다.

빠르고 편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생명을 기다리고 돌보는 마음만큼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천천히 살아가던 마음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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