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 어귀마다 작은 수선집 하나쯤 있던 시절을 기억해본다. 유리문에는 바랜 글씨로 '양복, 양장 수선'이 적혀 있었고, 문틈 사이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색상별로 걸려 있는 실들과 원단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던 풍경.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선집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무인 매장들의 간판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바지 기장을 줄이고, 헤진 소매를 덧대고,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아주는 곳을 이제 찾지 않는다. 옷이 망가지면 고치기 보다 새로 사기 때문이다 옷은 여전히 쉽개 해지고, 늘어나고, 찢어진다. 달라진 것은 이 이후의 행동이다. 예전에는 고쳐입었고, 지금은 버리고 새로 살 뿐이다. 왜 우리는 수선을 멈추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옷이 너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옷 한 벌의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비쌌고, 자연스럽게 옷 하나를 소중히 하며 오래 입으려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낡으면 수선하고, 물려 입기도 하고, 계절이 지나면 다시 꺼내 입었었다. 하지만 패스트패션 등의 세상에 너무 많은 옷들이 매 초마다 쏟아져 나오면서 새 옷을 사는 비용이 수선 비용보다 점점 더 저렴해졌다. 실제로 셔츠 한 장을 수선하는 비용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새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서 수선은 점점 비효율적인 선택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브랜드들은 매주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소비자는 고쳐 입는 대신 더 빠르게 새로운 옷으로 이동할 수 있다. 결국 수선 문화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밀려난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수선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관계'에 가깝다. 오래 입은 옷에는 자연스럽게 시간과 기억이 쌓기기 때문이다. 늘 입던 재킷의 헤진 소매를 다시 덧대고, 아끼던 바지의 무릎을 수선하며 옷의 주인은 옷을 단순한 소비재 이상으로 대하게 된다. 지금처럼 한 절 입고 버리는 구조에서는 생기기 어려운 감정일 것이다.
최근 빈티지 패션과 워크웨어 문화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일부 여기에 있다. 오래된 사용의 흔적, 닳은 원단, 반복된 수선 자국은 오히려 하나의 개성과 시간의 기록처럼 받아들여진다. 새것처럼 완벽한 상태보다, 오래 사용하며 생긴 흔적에 개성과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일부 브랜드들 또한 이런 흐름을 다시 읽고 있다. 무상 수선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제품의 리페어 과정을 컨텐츠로 보여주는 브랜드들이 등장한다. 단순히 새 제품으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경험' 자체를 브랜드 가치로 만들어간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옷을 수선하며 입기는 어렵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와 저렴한 생산 구조 속에서 소비자의 선택만 바꾸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옷들이 점점 너무 쉽게 버려지면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옷만이 아니다. 오래 사용하는 감각, 물건을 아끼는 태도, 그리고 시간을 들여 사용하는 문화 자체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수선집 불빛이 꺼진 거리에서, 우리는 점점 더 '버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버리는 것은 옷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 무언가를 함께 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