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산다는 것

2026.05.17 15:13:14

김문석

시인·전 국립교통대학교 교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삶을 조금씩 단순하게 정리하며 살아가게 된다. 젊은 날에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줄 알았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사람들과 화려한 경험이 인생의 가치라고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더 채우기 위해 마음까지 재촉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채우고 또 채워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늘 남아 있었다.

세월은 우리에게 조금씩 다른 진실을 가르쳐 준다. 많이 가진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물건이 많아질수록 관리할 것도 늘어나고,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잃을까 두려워진다. 관계가 많아질수록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지고, 일정이 빽빽할수록 마음이 쉴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젊을 때는 복잡하고 분주한 삶이 풍요로운 삶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복잡함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옷장 가득 옷이 넘쳐나도 늘 손이 가는 옷은 몇 벌뿐이고, 휴대전화 속 수많은 연락처 가운데 정작 힘든 날 마음 놓고 전화할 사람은 많지 않다. 넓고 화려한 집보다 햇살 잘 드는 작은 공간 하나가 더 깊은 안식을 줄 때도 많다. 결국 사람은 살아가며 꼭 필요한 것보다 없어도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붙들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래서 삶의 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생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비우고, 억지스러운 관계를 줄이며, 마음을 소모시키는 일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삶은 한결 가벼워진다.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는 비로소 여유가 머물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평온이 찾아온다.

혼자 있는 시간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외로운 줄 알았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어울려야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뒤처진 시간이 아니라,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다독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바람 따라 천천히 걷는 산책길,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는 저녁 시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은 비로소 깊이 쉰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순간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된다.

삶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곧 인생이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초라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만 남기고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화려한 것보다 편안한 것을 선택하게 된다. 많은 사람보다 마음이 통하는 몇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고, 시끄러운 자리보다 조용한 시간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것은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비로소 인생의 진짜 의미를 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잘 산 인생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지 않다. 얼마나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냈느냐에 달려 있다. 욕심을 조금 덜어낼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맑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비워낸 자리마다 늦은 오후 햇살 같은 평온이 조용히 머물게 된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적게만 가지는 삶이 아니라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알아보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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