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7년째 교단을 지키고 있다. 햇병아리 교사로 시작하여 중견의 부장교사를 거쳐 직속기관의 중간 간부와 학교장으로 살아오면서 참 열심히 살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8세(만 6세)부터 지금까지 학교라는 곳을 단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 학생으로 16년, 교육자로 37년. 직속기관의 교육연구관으로 살았던 1년 6개월이 학교를 잠시 떠나있었던 시간의 전부다.
그러는 사이 20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세 살 터울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길렀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학습발표회, 수업 공개의 날 등 부모와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아이 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은 내 학교의 입학식, 졸업식 일정과 겹쳤고, 운동회와 학습발표회 때는 반 아이들 걱정에 그 흔한 조퇴, 외출, 연가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당시에도 연가권 등 복무에 대한 권리는 당연히 존재했지만 학교에 피해가 갈까, 반 아이들 수업은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어 과감히 쓰지 못했다. 그건 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시대 많은 교사들이 그랬다. 꼭 상급자에 대한 눈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과 딸이 성인이 된 어느 날 함께 밥을 먹다가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니들 행사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서 많이 서운했지·" "서운했죠. 근데 저희가 그렇게 태어난걸 뭐! 그게 우리 몫이잖아요. 그래도 이렇게 멋지게 잘 컸잖아요." 아들과 딸의 대견스러운 말 한마디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라 눈가로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면서 쓴 소주 한 잔을 삼켰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진다.
노동자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는 당연히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를 찾고 누림과 함께 책무성과 공동체성도 동위의 가치로 판단해야 한다. 내가 37년의 교육 인생을 살면서 내 자식들 뒤로하고 그 흔한 연가나 조퇴, 외출을 쓰지 않은 것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권리를 챙기기 전에 의무와 책무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 온 사람이고, 지금은 '주어진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해이며 바보 같은 짓'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에 살고 있을 뿐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라고 가치를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권리를 정당하게 보장받고자 원한다면 책무를 다함은 물론 공동체성을 가지고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조직이야 어찌되는 말든 내 권리니까 내가 찾아먹겠다는 데……. 라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철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진리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 목적 추구만을 최상의 가치로 삼고 세상을 산다면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유리하며 이익이 된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결국은 관계는 무너지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 명약관하하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