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39년 만의 개헌 시도가 또 실패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끝내 본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7일 개헌안 표결은 부결이 아닌 투표 불성립이었다. 개헌 절차는 거기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 체제를 규정짓는다. 모든 국가기관의 행위를 규율한다.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규정짓는 국가 최고 규범이다. 국가의 방향은 헌법의 가치와 이념을 통해 제시된다. 헌법은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보장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돼 국가 공동체 분열을 방지한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졸속 개헌과 시기 조율 미비를 주장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헌법 개정은 국가의 뼈대를 바꾸는 일이다. 여야 합의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은 왜 본회의장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냐고 묻는다. 거기서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이유를 되묻는다. 국회의원은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안건에 반대한다면 반대표를 던지면 된다. 개헌안은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면 통과되기 어려운 구조다. 정치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충분히 개헌안 통과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예 표결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여기서 국민의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무기명이라는 표결 방식 때문이다.
무기명 표결에선 기명보다 소신 투표 가능성이 크다. 일부가 찬성표를 던질 수도 있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결과는 뻔하다. 국민의힘 지도부 통제는 흔들리고 당론은 흩어지기 쉽다. 반대로 국민의힘 의원 100%가 반대표를 던졌어도 좋을 게 없다. 아무리 보수당이라고 해도 광주와 부산·경남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5·18과 부마항쟁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래도 저래도 매우 곤란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가장 안전한 선택이 표결 불참이었을 게다. 일단 반대표를 던진 기록이 남지 않는다. 찬성표 이탈 가능성도 차단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겉으로는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론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 민주당의 정치공학적 셈법도 다르지 않았다. 개헌안 표결이 쉽사리 성사될 거로 본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 협조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런데도 표결을 강행했다. 매우 선명한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결국 개헌 무산 책임이 국민의힘에 있다는 프레임을 완성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명분을 충분히 확보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은 개헌을 놓고 원칙을 말했다. 물론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양당 모두 개헌을 지방선거에서 유불리를 따진 정치공학적 도구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두 거대 정당이 함께 개헌 실패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헌법이 특정 정당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 시스템의 안전장치로만 작동해야 한다. 먼저 정치권이 정쟁의 늪에 빠지지 않아야 바꿀 수 있다. 정파와 진영을 떠나 오직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개헌 주장만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야는 긴 안목에서 시대 변화에 걸맞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39년간 못한 개헌이다. 개헌 자체가 실패해서는 안 된다. 결코 포기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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