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군북면 대촌리 부녀회장 남영애 씨가 농어촌 기본소득 사용 확대에 맞춰 생필품 품목을 늘린 ‘방아실마트’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옥천군
[충북일보] "세제 큰 걸로 하나 갖다줘요."
옥천군 군북면 대촌리의 작은 가게 전화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린다. 대부분은 마을 어르신들의 주문 전화다. 달걀 한 판, 휴지 한 묶음, 라면 몇 봉지.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이제 읍내 마트보다 더 가까운 곳은 이 작은 가게다.
가게 주인은 대촌리 부녀회장 남영애 씨. 그는 요즘 자신의 가게를 "마을 사랑방이자 생활창구"라고 부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평택에서 태어난 남 씨는 대촌리가 고향인 남편과 결혼한 뒤 대전에서 장사를 하며 살았다. 그러다 3년 전, 고향 길목에 24시간 편의점을 열었다. 인근 관광지를 찾는 방문객과 주민들을 겨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겨울이면 손님 발길이 끊겼고, 비가 잦은 여름철이면 하루 종일 가게 문만 지키는 날도 많았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적지 않았다.
변화는 옥천군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찾아왔다. 지역민들에게 월 15만 원씩 기본소득이 지급되자 마을에도 조금씩 돈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또 다른 불편을 이야기했다.
"막상 쓰려고 해도 돈 쓸 곳 자체가 없어요."
대촌리는 세제 하나, 달걀 한 판을 사려 해도 읍내까지 나가야 하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50가구 12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인 만큼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가까운 곳에서 사기 어려웠다.
남 씨는 그 말을 듣고 편의점을 일반 소매점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남편과 마을 이장의 도움을 받아 사업자등록을 변경했고, 편의점 본사와 협의를 거쳐 상호와 결제 시스템은 유지한 채 판매 품목을 늘렸다. 이후 계란과 세제, 생활용품들이 하나둘 매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주문형 배달 판매대'도 만들었다. 전화 한 통이면 직접 물건을 챙겨 집까지 가져다준다.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말벗이 되는 일도 늘었다.
50가구 남짓한 산골마을에서 이 작은 가게는 단순한 상점 이상의 공간이 됐다. 기본소득이 지역 안에서 다시 소비되고, 그 소비가 또 다른 생활서비스로 이어지는 '마을 순환'이 만들어진 셈이다.
실제 옥천 곳곳에서는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안남면에서는 기본소득 이후 장터와 작은 가게들이 다시 살아났고, 폐업 직전 식당이 재개업하거나 오토바이 수리점이 마트로 바뀌는 사례도 이어졌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손자·손녀가 더 자주 내려온다", "마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말도 나온다.
남영애 부녀회장은 "수익보다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편하게 사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가실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농어촌 기본소득이 없었다면 이런 변화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월 15만 원은 스쳐 지나가는 돈일 수 있다. 하지만 대촌리에서는 그 돈이 작은 가게 하나를 살렸고, 어르신들의 생활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 남영애 씨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연결고리 삼아 더 따뜻하고 활력 있는 농촌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옥천 / 이진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