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피할 수 없이 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삼시세끼를 취하는 일, 몸의 아픈 부분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일, 생계를 위해 희생하는 일…. 이처럼 아무리 면해 보려고 잔머리를 굴려도 피치 못 하게 해야 하는 일들이 주변에 널려 있기 마련인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행동에 앞서 생각을 먼저 취사선택해야 합니다. 툴툴거리며 마지못해서 할 것인지,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인지.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삶에 도움을 주는 태도인지는 니체 철학의 중심 개념인 '운명애'에서 잘 드러납니다. 가수 김연자가 노래로 불러 유명해진 단어인 아모르파티(amor fati)는 니체의 철학 전반과 연관을 갖는 개념입니다. 아모르는 '사랑', 파티는 '운명'을 뜻합니다. 따라서 아모르파티는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번역할 수 있는 라틴어 어구이고, 이는 '운명애'와 연결됩니다.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대목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운명애를 가진 사람은 위대하다는 게 나의 신조다. 운명애는 살아갈 날에서도, 살아온 날에서도 영원히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삶의 자세다.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다."
매슬로의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보여줍니다. 일상적 관찰과 자기실현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면접을 통해 그는 성장의 과정이 '절정감'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절정감은 자아와 환경의 일치를 뜻합니다. 그것은 '내적 필요성'과 '외적 필요성', 혹은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해야만 하는 것' 사이의 조화를 의미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다."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도 매슬로와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내적 자극에 대해서건 외적 자극에 대해서건 가장 경제성이 높은 방향으로 행동 방침을 정하고 그쪽을 따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깊은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니체와 매슬로의 '운명애'와 '절정감'은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자기 행동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가지려는 자세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희열과 인격의 성장은 자신의 의지를 통해 무질서한 일상생활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사랑하게 될 때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한 니체의 말은 백번 옳습니다. 매슬로와 로저스가 들고 나온 말도 백번 옳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의지는 감정을 낳고, 감정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결국 우리의 의지가 만사의 원인이고 뿌리인 셈입니다.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번 해 보자'이고, 패자가 즐겨 쓰는 말은 '해 봐야 별수 없다'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