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연구하는 물리학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원자 속 전자는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 중간 과정 없이 순간적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연속적으로 느끼지만 어쩌면 어떤 순간에는 그 시간조차 넘어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제천에서 그렇게 시간을 건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청풍문화유산단지다. 계절은 여름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조용히 과거로 방향을 튼다.
청풍대교를 건너기 전, 길을 따라 들어서면 하나의 문이 나타난다. 바로 팔영루(八詠樓)다. 지금은 청풍문화유산단지의 입구이지만 과거에는 청풍부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고 한다.
이 문을 지나는 순간, 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단순히 공간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결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현재인지 혹은 수백 년 전인지 잠시 헷갈린다.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이 지역의 마을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공간'일 뿐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향교, 관아, 민가, 석물 등 흩어져 있던 문화재들이 이곳으로 옮겨져 복원됐다. 그래서 청풍문화재단지는 단순한 문화재 단지가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이어 붙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팔영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관아 건물들이 차분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벽루, 금남루, 응청각, 청풍향교 등은 옛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질서와 삶의 방식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망월산성에 올라 내려다보면 청풍문화유산단지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한벽루에 서면 그 당시 사람들이 바라보았을 풍경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지금의 청풍호 대신 마을과 길, 사람들의 삶이 있었을 자리다. 그 풍경 위에 현재의 바람이 겹쳐지며 묘한 시간의 중첩을 느끼게 된다. 청풍호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천을 대표하는 중심이 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와 그 위를 흐르는 바람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사라진 마을의 자리에는 또 다른 풍경이 만들어졌고 그 풍경은 다시 이야기가 된다.
청풍문화유산단지를 걸으면 한 걸음은 현재에 또 한 걸음은 과거에 닿는다. 장승이 늘어선 길을 지나 관아의 마당을 가로질러 한벽루에 올라 바람을 맞는 순간 이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던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5월의 제천은 한층 부드러워진 계절의 결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함보다는 초록이 짙어지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 더 여유롭고 깊이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 따뜻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사이에서 청풍문화유산단지는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새로운 것을 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느껴진다. 옛날 건물들을 보면 조금은 오래된 고장을 보는 것 같다. 청풍문화유산단지는 지나간 시간을 다시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난 뒤에도 어딘가에 계속 머물러 있는 느낌이 남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왔지만 아직 완전히 현재로 돌아오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른 장소가 아니라 다른 시간을 만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기대하며 청풍문화유산단지를 방문해 보실 것을 추천한다.
특히 단체 관광객이라면 전통시장 러브투어 사업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 30명 이상의 타 지역 관광객이 지역 식당을 이용하고 명소를 관광한 뒤 전통시장에 일정 시간 체류할 경우 관광버스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있어 단체 여행에 특히 유용한 프로그램이다. 각자의 시간에 맞춰 최적의 여행 코스를 이어가 보시기 바란다.
/ 제천시 공식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