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등대'로서의 파놉티콘을 세우자

2026.05.06 16:42:39

정재환

청주시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필자는 종종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몇 년 전부터 대형 트레일러 후미에 커다란 눈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운행하는 차량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귀여운 낙서를 해둔 것으로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제러미 벤담의 책을 읽은 후, 트레일러 후미에 그려진 '눈'은 장난이 아닌,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파놉티콘(Panopticon)'의 현대적 활용이다.

우리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잘 알려진,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효율적인 감시 시스템인 파놉티콘 형태의 감옥을 제안했다. 이는 사람이 일일이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자체가 피감시자를 규제하도록 설계된 독특한 구조다.

​파놉티콘의 핵심은 시선의 비대칭성에 있다. 원형 건물의 중앙에 높게 솟아있는 곳에서 감시자는 외곽의 피감시자를 모두 볼 수 있지만, 그 구조의 특성상 피감시자는 감시자의 존재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피감시자는 감시자가 자리에 없더라도 항상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라는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해, 스스로 행동을 규제하게 되는 구조이다. 벤담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통제 효과를 거두려 했던 공리주의적 효율성을 이 건축이론으로 담아냈다.

​비록 벤담이 구상한 형태의 교도소가 실제로 건립된 적은 없으나, 그 원리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트레일러의 눈 스티커가 대표적이다. 뒤차 운전자에게 '내가 보고 있으니 졸지 마세요'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냄으로써, 졸음운전 교통사고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어느 신축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반복되던 노상 방뇨 사건을 들 수 있다. 온갖 방법을 써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한 주민이 'CCTV 촬영 중'이라는 문구 하나를 붙이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실제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라는 환경적 설정이 사람의 행동을 교정한 것이다.

흔히 파놉티콘은 인간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읽히곤 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타인의 시선이나 처벌이 두려워 억지로 행동을 조심하는 '감옥'으로서의 파놉티콘이 아니라, 나 자신을 스스로 바른길로 인도하는 '마음속 등대로서의 파놉티콘'을 세워보는 것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도 자신을 스스로 지켜보는 내면의 눈을 갖는 것, 그것은 나를 구속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혼란한 세상 속에서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주는 등대와 같다. 외부의 강요에 의한 도덕이 아니라, 내 마음 중심에 세워진 밝은 등대를 보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나가는 삶.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선의의 파놉티콘' 하나씩을 품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거창한 감시 체계 없이도 더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당신의 마음속에 당신만을 위한 선의의 파놉티콘, 등대로서의 파놉티콘을 세워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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