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은 지금 고운 한복을 입고 있다. 분홍 저고리에 초록 치마, 그 위에 노란 민들레 모양의 수를 점점이 놓은 풍경이다. 바람이 스치면 치맛자락이 한 번씩 흔들리고, 얇은 햇빛이 과수원에 내려앉는다.
보름 남짓, 복숭아나무 가지마다 화사하던 복사꽃이 이제 내려올 채비를 하고 있다. 한 잎 두 잎, 낙화하는 꽃잎의 바통을 잎눈이 받을 참이다. 막 틔운 잎눈이 아직 모양도 갖추지 못한 지금, 연둣빛이 번지기 직전의 시간이다. 떠나야 하는 꽃잎도, 피어올라야 하는 잎새도,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머뭇거리고 있다.
바닥의 생명들은 정반대로 분주하다. 냉이꽃은 씨앗을 여물리고, 민들레는 노란 꽃을 접은 자리에 솜사탕 같은 씨앗을 부풀리고 있다. 나무가 잎을 키워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온 땅 골고루 쏟아지는 봄 햇살에, 부지런히 살아낸 작은 생명들이다. 시간은 이처럼 나무 위와 바닥에서 다르게 흐르고 있다. 나무는 아직 시작도 다 하지 않았는데, 바닥의 작은 것들은 이미 한 계절을 살아낸 셈이다.
바닥의 생명들은 봄이 오기 전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아직은 너무 춥다고 미적거리다가는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릴 것을 알았던 걸까.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겨울 끝자락의 칼바람을 피하고, 엷은 햇볕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 삶을 이어와 씨앗을 남기는 일을 해 낸 것이다.
작은 생명들의 시간을 더듬다가 내 지난날의 그늘진 시간에 생각이 닿는다.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 준 봄 햇살 같은 존재가 내게도 있었다. 두 아이, 글쓰기, 포도나무와 복숭아나무…. 낙심 속에서도 나무 앞에 서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보면 살아졌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한 편씩 쓰는 글은 나를 깊이 이해하는 벗이었다.
다시 복숭아나무와 바닥의 풀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한다. 저들의 시간은 서로 닿지 않으면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겹치지 않아서 밀어내지 않아도 되는 자리.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고 늦었다고 할 것도 없는 흐름이 봄바람처럼 자연스럽다.
잠시 바람이 스치자 분홍 꽃잎이 초록 풀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냉이 꽃대와 민들레 씨앗이 가만히 흔들린다. 떠나는 것과 오는 것들의 시간 속에서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음을 안다. 서두르지 않아도, 머뭇거리는 순간들 속에서도, 생은 제 길을 찾아간다는 것을. 과수원은 말없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 이수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