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똥과 하루나

2026.04.21 15:27:32

남호순

시인·배바우도서관장

온 나라가 봄똥 비빔밥으로 시끄럽다 한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세상인 SNS에서 불이 붙어 마트마다 불티가 난단다. 봄이 되었으니 푸릇한 봄똥이 인기 있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냐고 덤덤하게 대꾸했더니, 지인 하나는 동네 마트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왔다며 혀를 내둘렀다.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농사꾼인 나는 그 요란한 소식을 들으며 '참 별게 다 유행이네' 싶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살짝 달뜨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이름부터 요상하고 들어가는 재료도 국적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들이 유행하는 것보다야, 땅에서 자란 푸성귀 하나가 온 나라의 입맛을 사로잡는 편이 백번 천번 반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얼마나 정겨운가. 봄똥.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면 아랫입술이 무겁게 닫혔다 터지는 소리가 꼭 겨우내 얼어붙었던 흙덩이가 봄볕에 툭 터지는 소리 같다.

궁금한 마음에 그 투박한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았더니, 소박하기 그지없는 설 하나가 마음을 붙잡는다.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자라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들판에 널린 소똥을 닮았다는 것이다. 봄 들녘에 소똥처럼 아무렇게나 자라는 푸성귀라 하여 사람들이 '봄똥'이라 불렀을 것이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먹는 음식에 '똥' 자를 대놓고 붙이기가 민망하여 글자로는 '봄동'이라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학술적인 정설이든 아니면 시골 노인들의 우스갯소리든 상관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 어떤 그럴듯한 어원보다 훨씬 더 살갑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내 텃밭에도 그 소똥을 닮은 녀석이 하나쯤 있을까 싶어 장화를 끌고 밭으로 나갔다. 작년 가을, 배추를 수확하고 남은 자리에서 용케 겨울을 버텨낸 녀석이 한두 개쯤은 고개를 내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허리를 굽히고 사방을 둘러봐도 흙바닥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유행이라는 바람을 타고 내 밭에도 찾아와 주길 바랐건만 야속하게도 자취를 감춘 모양이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봄똥이 떠난 자리 내 텃밭에는 올봄에 나를 먹여 살리려고 남겨둔 '하루나'가 지천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유채라 부르고,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하루나'라 불렀던 푸른 잎사귀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견뎌낸 녀석들은, 봄똥처럼 잎이 넓고 둥글지는 않지만 겨우내 응축한 생명의 쌉싸름한 맛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나는 하루나 한 웅큼을 뜯어냈다. 세상 사람들이 마트 매대를 서성거리며 봄똥을 찾을 때, 내 밭에서 뜯어낸 푸른 잎들로 나만의 성찬을 준비한다. 대충 씻어 툭툭 털어낸 이파리들을 양푼에 가득 채우고, 갓 지은 밥에 고추장 한 숟갈 그리고 가을에 짜둔 들기름을 아낌없이 두른다.

숟가락을 들고 썩썩 비벼 한 입 가득 밀어 넣는다. 아삭하게 씹히는 소리와 함께 입안이 순식간에 풀들로 가득 차오른다. 쌉쌀하면서도 끝 맛이 달큰한 이 기운은 유행하는 음식처럼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저 정직하게 겨울을 버텨낸 식물만이 줄 수 있는 땅의 위로다.

밥알을 씹을수록 몸 구석구석에 푸른 풀물이 드는 것 같다. 그것은 억지스럽지 않은 가볍고 기분 좋은 스며듦이다. 유행을 따르지 못했다고 해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밭에 자란 하루나 한 그릇이면, 나는 이미 이 봄의 가장 깊은 곳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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