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의 꽃

2026.04.16 16:34:45

김순덕

수필가

맞벌이 부부인 아들 내외가 도움을 요청해 왔다.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빠와 함께하는 딸기밭 현장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데 대신 동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날은 나도 중요한 볼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가 함께하기로 했다. 남편은 설렘과 긴장으로 그날 입고 갈 옷을 고르느라 분주한 가운데, 젊은 아빠들 사이에 나이 든 남편 혼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긴장하게 했나 보다. 그러면서도, 내 자식들 키울 때는 근처도 가보지 않았던 어린이집을 손자 때문에 가보게 되는 새로운 경험이 한편으로는 재미있다며 싱글벙글한다.

손자가 태어나고부터 우리 부부에게는 많은 변화와 경험이 있었다. 아기가 백일을 맞기도 전에 출근해야 했던 며느리는 부모님께 부담 주지 않기 위해서 아이돌보미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다른 사람에게 아기를 맡긴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아기를 돌볼 여력과 시간이 되었기에 아기 돌보미를 자청하였다. 교대로 근무하는 아들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남편과 같이 손자를 돌볼 수 있는 조건이라 수월함이 있었다.

아들 내외가 출근 전에 나는 아들 집으로 출근해서 기저귀의 사용법부터 배웠다. 기저귀의 파란 테이프 붙은 쪽을 엉덩이 쪽으로 보내고 앞쪽의 노란 줄이 파랗게 변하면 갈아줘야 한다는 것은 천 기저귀를 사용했던 내게는 신문물이었다. 파란 테이프가 왜 붙어있는지 궁금했는데 기저귀 버릴 때 말아서 붙이는 용도라고 하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트림시키고, 이유식까지 자질구레 익혀야 하는 것이 아기가 자라는 만큼 늘어갔지만, 손자와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자장가 소리에 잠든 손자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토닥이는 손끝에도 전해지는 자장가는 사랑을 다 모아 써도 모자랄 만큼의 '사랑' 그 자체였다.

손자 매직에 걸린 남편도 투박한 손으로 분유를 타고 트림시키고 똥 기저귀 갈고 씻기는 일까지 척척해냈지만 어딘가 불편했는지 손자는 할미인 나에게만 달라붙어 웃음을 주었다.

새근새근 잠만 자던 아기가 어느새 자라 겁먹은 얼굴로 걸음마를 시작했던 지난 3월에 손자는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아직 말도 못 하고 걸음마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보낸다는 것이 마뜩잖았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부모의 몫이라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손자가 안쓰러워 속상하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단단하게 변화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황혼육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봐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내 인생을 생각하면 조금 서운하더라도 절대 봐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후자에 가까워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아기를 봐 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었다. 주변에서 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나 옛말에도 애 봐준 공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치고 보니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한창이다. 봄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꽃 중의 꽃, 인(人)꽃만 하겠는가. 오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人)꽃이 하원하는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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