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좋아하는 계절 / 시인․화가 양선규
부지깽이를 꽃아도 싹이 나고 하늘이 점점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을 지나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는 곡우(穀雨)를 앞두고 있다.
며칠째 봄비가 내렸다. 나무마다 촉을 틔우고 숲은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봄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몸이 좋아하는 보약 같은 안성맞춤의 계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전라남도 땅끝 마을 해남, 윤선도의 녹우당을 연상케 하는 옅은 녹색의 물감이 나뭇잎을 타고 흘러내리는 듯한 빗물은, 머릿속을 씻은 듯 마음을 맑고 경쾌하게 한다. 녹우당(綠雨堂)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집터이자 조선시대 중기 사대부의 삶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이다. 관직과 권력보다는 자연과 시문을 택했던 조선의 은자(隱者)로 알려진 한국 가사문학의 거장인, 그의 삶은 도학자이자 시인으로서 모범이 되었다." 녹우당은 호방한 자연 풍광이 펼쳐진 문화 예술을 꽃피운 고산(孤山)과 잘 어울리는 당호(堂號)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째 내린 봄비 탓일까, 지역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봄의 기운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꽃들이 동시다발로 핀다. 발길 닿는 곳마다 마음 환하게 밝혀준다. 움츠렸던 마음과 몸도 스스럼없이 풀려, 넓고 드넓은 큰 기운으로 좋은 생각들과 행동들이 자연스러움을 연출해 내는 거리낌 없는 당당한 기개를 가져다주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맛보는 계절이다.
소백산맥을 넘은 봄바람이/꽃의 문 열기 시작하더니/전국적으로 동시다발/동시 상영으로 꽃이 핀다//매화, 산수유, 목련은 지고/벚꽃, 앵두, 진달래, 살구꽃/차례차례 연속 상영이다/입장료도 안 냈는데,/꽃구경, 사진 촬영은 서비스다/어제는 직지사 오늘은 대청호/내일은 함양 백운산 동백마을/오십 리 벚꽃길 달려야겠다//사는 게 어렵다 어렵다 해도/또 이런 날도 있지 않은가/오늘도 상영 시간은 무제한/꽃 사진 전송도 무료다 -양선규 '시'「동시 상영」전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산수유, 매화, 목련은 지고 명자꽃, 진달래, 벚꽃, 앵두와 살구꽃 세상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내고, 보내오는 봄의 꽃 소식은 마음 환하게 물들이고 볼 때마다 발걸음 가볍게 한다. 한바탕 꿈결같던 봄의 꽃들이 지고 나면, 연두의 나무와 산빛이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을 즈음, 봄은 가고 짙은 녹음의 계절이 올 것이다. 대지의 뜨거운 열기로, 유월의 하얀 개망초와 주황색 산나리가 피고 강가의 물새는 알을 품고, 산뽕 나무에는 까만 오디에 단맛이 들고, 덩굴 숲에는 붉은 산딸기가 익어갈 것이다. 춘풍화기(春風和氣), 춘풍득의(春風得意)라 했다.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봄을 말하고, 봄바람을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고 일이 잘 풀리는 상태를 말한 것인데, 요즘 계절에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는 단비에, 나무들은 춤을 추고 피어나는 꽃들과 마음 푸르게 변화하는 푸릇푸릇한 농작물과 산빛을 기대해 보며, 봄의 기운으로 누구에게나 힘이 넘쳐나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건강한 봄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