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컬렉터들을 위한 라이브 플랫폼 : WYYYES 와이스의 PM으로서 컬렉터들의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한국의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소통으로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컬렉팅 문화를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컬렉터 커뮤니티와 소통하다 보면, 저에게는 매우 익숙하지만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낯설게 느껴지는 표현을 자주 마주치곤 합니다. 바로 'PSA 10'이라는 단어인데요. 완전히 동일한 카드라도 이 숫자 하나에 따라 시세가 수 배, 때로는 수십 배까지 벌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곤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그레이딩 문화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레이딩(Grading)이란 수집품의 상태를 제3의 전문 기관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한 뒤, 훼손 방지를 위한 슬랩(Slab)이라 불리는 투명 케이스에 봉인하는 서비스입니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미국의 PSA(Professional Sports Authenticator)와 BGS(Beckett Grading Services)가 있으며, 특히 PSA는 전 세계 컬렉터들 사이에서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등급은 1점부터 10점까지로 나뉘며, 센터링·모서리·테두리·표면 상태 등 네 가지 항목을 종합 평가하여 산정됩니다. 최고 등급인 PSA 10, 즉 '젬민트(Gem Mint)'가 부여된 카드는 그 희소성만으로도 상당한 프리미엄이 형성됩니다.
그레이딩 문화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0년대 북미 스포츠 카드 시장이었습니다. 당시 유통 과정에서 카드의 진위와 상태에 대한 분쟁이 잦아지자, 공인된 기관의 감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퍼졌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포츠 카드를 넘어 포켓몬카드를 비롯한 TCG, 그리고 빈티지 피규어나 게임팩 등 다양한 수집 장르로 빠르게 확장되어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 포켓몬카드 붐과 함께 그레이딩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고, 현재는 미국 현지로 카드를 직접 발송해 감정을 받는 컬렉터도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도 다양한 그레이딩 서비스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며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데요, 일본에서도 자국에서 현재 큰 하입을 얻고 있는 ARS를 비롯해 PSA 재팬 법인이 설립되는 등 아시아 전반에서 그레이딩 문화의 확산세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레이딩 문화가 컬렉팅계에서 무조건 긍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 목적의 접근이 커지다 보니, 그레이딩 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금전적 피해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합니다. 또한 포토카드처럼 카드를 직접 손에 쥐고 느끼는 행위 자체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수집 문화에서는, 슬랩에 봉인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수집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딩이 컬렉터 시장에 가져온 가장 중요한 기여는 신뢰의 표준화라고 생각합니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상태 인식 차이로 인해 발생하던 분쟁을 줄이고, 수집품이 하나의 자산으로 투명하게 유통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슬랩에 담긴 숫자 하나에는 단순한 등급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카드의 상태를 수십 년간 지켜온 누군가의 애정과 시간이 함께 봉인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