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두 송전선로와 국토균형발전, 에너지 정의를 묻다

2026.04.09 17:40:44

류인숙

(사)제천YWCA 상임이사

최근 한국전력이 제천을 관통하는 154㎸ 송전선로 2개 노선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맞물려, 봉양읍을 포함한 제천 4개 읍·면·동(봉양읍·송학면·백운면·의림지동)을 관통하는 345㎸ 초고압 송전선로(신평창~신원주) 건설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강원도 강릉 화력 발전소의 전력을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보내기 위한 국책사업으로 제천은 4개 읍·면·동 16개 마을이 경유지로 포함됐으나 직접적 혜택은 없다.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한 초고압망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들려온 이 소식에 제천 시민들은 또다시 '일방적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제천은 이미 거미줄 같은 송전탑이 도심과 농촌을 점유한 도시다. 지난 가을, 푸른 하늘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지만 앵글마다 걸리는 전선과 철탑 탓에 결국 인공지능(AI) 앱의 '지우개' 기능을 빌려야만 했다.

아름다운 풍광마저 기계의 힘으로 복원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은 제천 시민에겐 비일비재한 일상이다. 이미 포화 상태인 전력 설비 위에 두 개의 대규모 송전선로를 더 얹겠다는 것은, 지역 공동체의 터전을 단순한 '전력 통로'로만 치환해버린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의 단면이다.

여기에 송전설비 인근 주민들이 겪어 온 경관 훼손, 재산가치 하락, 건강에 대한 불안은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또 다른 비용이다.

안정적인 전력망 확충이 국가 성장에 중요함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력 사용의 이익은 수도권과 대기업이 누리고, 그로 인한 환경적·사회적 비용은 왜 오롯이 제천 같은 중소도시가 감당해야 하는가.

이 구조적 모순을 우리는 '에너지 불평등'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공정한 에너지 정책은 효율성만큼이나 지역 간 형평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인프라 집중은 충북이 마주한 지역 불균형의 민낯이다. 한쪽에서는 공공기관 유치와 국토균형발전을 외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송전선로와 같은 기피 시설의 부담을 계속 중부내륙과 비혁신지역에 전가한다면 이는 균형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또 다른 소외를 키우는 모순이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위해 제천을 관통하는 345㎸ 초고압선과, 영월화력과 제천을 잇는 154㎸ 선로가 동시에 추진되는 상황에서, 피해 지역은 제천 하나뿐인데 혜택을 받는 대상은 너무 멀리 있다.

진정한 균형발전은 기회뿐 아니라 부담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에너지 정책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제는 '전압'보다 '인간의 존엄'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사진 속 전선은 AI로 지울 수 있을지 몰라도, 주민 가슴에 새겨진 상실감과 불안은 그 어떤 기술로도 지울 수 없다.

한전은 일방적 계획을 멈추고,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협의 구조부터 마련해야 한다.

제천은 전력의 통로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살고 있는 소중한 터전이다. 국가와 한전이 책임 있게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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