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그림
ⓒ김재범
'달항아리, 달항아리…' 며칠째 달항아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난데없이 아들놈이 달항아리를 그려 달라고 한다. "아버지, 달항아리 그려주세요. 입주할 집 거실에 걸어놓으려고요" "야, 돈만 주면 좋은 그림이 얼마나 많은데…" "저는 아버지 그림을 걸고 싶습니다" "내가 화가냐" "아버지가 그리신 달항아리 그림을 꼭 걸고 싶습니다. 아내도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제 아비 말을 끊으며 끝내 그려 달라고 한다. 난감한 상황이다. 달항아리를 그려야 한다. 화가도 아닌 내가 달항아리를 그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아비이고 시아버지다. 그동안 뭐든 해결해 온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다. 내일모레 쉰인 아들이 칠십이 넘은 아비에게 숙제를 내준 셈이다. "아버지 숙제하시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그 말이 계속 떠오른다. 잠자리에 누워도 웃고 있을 아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전전긍긍하는 아비의 모습이 우스울 것이다.
평생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며 살았다. 그러고 보니 숙제를 앞에 둔 아이들 속내를 헤아려 본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을 혼낸 기억은 적지 않다. 아들놈에게는 더 엄했다. 어렸을 때 숙제하느라 힘들어할 때도 집에서마저 선생 노릇만 했다. 어린 아들의 짐을 덜어주는 아빠라기보다 언제나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아들은 저를 포함해 나를 거쳐 간 제자들의 몫까지 돌려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화가도 아닌 아비에게 이런 그림 숙제를 맡길 리 없다. 해보기로 한다. 그래야 손자에게 무엇이든 해내는 할아버지일 수 있다.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본다. 음악 문외한이던 내게 음악 담당이 맡겨졌을 때 교과서 몇 곡을 풍금으로 수백 번 연습했다. 아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잘 따라 불렀다. 겨우 개헤엄 치던 내가 수영 담당이 됐을 때도 아이들을 냇가와 저수지로 데려가 가르쳤다. 그중 한 아이가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젊다는 이유로 체육을 맡기더니 씨름 선수까지 지도하라고 했을 때도 아이들과 직접 샅바를 잡고 가르쳤고, 결국 KBS배 장사씨름대회 단체전 3위를 했다. 돌아보면 낯선 일도 결국 해내며 살아왔다.
인터넷과 화방을 돌아다녔다. 아크릴 물감은 전문가용으로 샀다. 항아리를 칠할 백색 물감과 바탕을 칠할 하늘색, 청색, 회색을 담았다. 흰색에 검은색을 섞어 명암을 표현하려고 검은색과 여러 색도 준비했다. 캔버스는 거실에 걸 예정이라 큰 30호를 주문했다. 막상 도착한 캔버스를 보니 생각보다 커서 부담이 된다. 어떻게 그릴지 여러 번 고민하게 된다. 아들놈이 왜 이 그림을 부탁했는지도 생각해 본다. 달항아리가 복을 불러온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때 전교 1, 2등을 했고 고등학교에서도 늦게까지 공부했다. 나는 아비로서 과외도 못 시키고 학원도 보내지 못했다. 붓을 들고 그리다 보니 선이 어긋난다. 대학은 서울로 가고 싶어 했고 그 실력이면 가능했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청주의 국립대에 진학시켰다. 손이 자꾸 떨린다. 그때의 선택이 마음에 남아 있는 듯하다. 대학 조교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안정된 자리를 잡았다. 다시 붓을 멈추고 고쳐 그린다. 가슴 한켠이 계속 걸린다.
아들 집 거실 벽 중앙에 둥근 달이 걸렸다. 아들은 집을 드나들며 그 그림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 함께했던 기억이 남아 있을지 문득 떠올려 본다. "아버님 그림이 시원하고 멋있어요." "할아버지 잘 그렸어요." 며느리와 손자가 말한다. "아버지 그림 좋은데요." 아들도 한마디 보탠다. 이제 나는 아들 집 달항아리 안에 남게 된 셈이다. 자식이 자라 품을 떠난 자리에서 그 집 거실 한가운데에 그림으로 남는다. 언젠가는 그 달항아리와 함께 기억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용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