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지난해 7월 청주 북부시장에 경양식 돈가스 전문점이 들어섰다. 순대국밥, 곰탕, 수제비 등이 오랜 시간 점심시간 단골들을 이끌던 동네에 등장한 전에 없던 메뉴는 인근 직장인들은 물론 시장 상인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시장 상가 불빛이 하나씩 꺼지는 시간에도 투명한 유리 너머로 환하게 밝힌 불빛이 저녁 손님들을 기다린다. 처음에는 수량 조절이 어려워 재료 소진으로 이른 마감이 이어졌지만, 차츰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저녁에도 편안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엔틱한 테이블과 의자, 조명과 소품이 경양식 돈가스와 어울린다. 경양식(輕洋食)은 말 그대로 가벼운 양식이라는 의미다. 격식을 갖춘 양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단품을 중심으로 내놓는 메뉴 중 가장 상징적인 메뉴가 돈가스다.
이민식 대표가 선보이는 돈미정의 돈가스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제대로 만들어 한 그릇에 담아낸다. 새벽부터 나와 국내산 생등심을 정성으로 손질하고 두들기고 숙성하는 것이 시작이다. 생등심 사이에 치즈를 채워 넣는 치즈 돈가스와 국내산 닭 안심으로 만드는 치킨가스, 필렛을 손질해 메뉴에 맞는 크기로 튀기는 생선가스, 큼지막한 새우를 튀긴 왕새우 튀김 등은 각 메뉴로도 맛볼 수 있고 모듬돈가스 메뉴에서는 한 번에 즐길 수도 있다.
각각의 돈가스에 따라 달리 만드는 소스 덕분에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모듬돈가스 한 접시가 소스 하나 남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비워진다. 사골과 닭 뼈를 이틀 정도 끓인 뒤 양파 등 신선한 채소를 넣고 만드는 육수는 소스의 기본이다.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 소스의 깊은 맛이 담백한 고기 맛을 뒷받침한다. 생선가스에 어울리는 레몬 타르타르 소스도 맛을 가감해 직접 만든다.
돈미정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돈가스는 또 있다. 이 대표가 어릴 적부터 먹어오던 맛에 살짝 매콤함을 더해 만능 소스처럼 만든 해산물 돈가스다. 원형 접시 가득 푸짐한 해물이 들어간 붉은 소스가 돈가스와 만나 특별한 맛을 탄생시켰다. 많은 단골이 불맛 가득한 짬뽕 소스와 떡볶이 사이의 무언가를 떠올리는 이 소스는 그 자체로 해산물 볶음요리라고 해도 될 만큼 해물이 듬뿍 들어있다. 새우, 꽃게, 오징어, 피망, 양파 등을 빠르게 볶아 불맛을 머금게 만든다.
아내와 함께 고민해 만든 메뉴들은 여성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얇게 썬 양파를 한 줌 올리고 양파 크림소스로 덮어 아삭한 식감에 샐러드처럼 부담 없이 찾는 스노우 돈가스나 숙주를 볶아 불향을 입히고 명란마요 소스와 약간의 명란젓을 함께 내는 코랄블랑돈가스, 크림치즈와 고구마 퓨레 위에 볶은 피스타치오를 부숴 토핑으로 고소함을 더한 골든블랑돈가스 등 색다르게 즐기는 돈가스 메뉴가 자주 찾아와도 질리지 않도록 골라 먹는 즐거움을 준다.
돈가스를 먹기에 앞서 손님을 맞는 어니언 스프에도 정성이 담긴다. 루를 볶아 배합하고 곡물 튀김과 함께 고소하게 떠먹을 수 있게 했다. 모닝빵이나 식빵 대신 치아바타 한 조각을 함께 내는 것도 고급스러운 한 끗이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곳에서 수십 년 전 추억의 맛을 찾았다는 이들도 점점 많아진다. 아무 말 없이 돈가스 맛만으로 옛 기억이 소환될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과 함께했던 이전 가게의 노하우를 발전시켜 가져온 덕이다. 28년간 운영하시던 부모님의 오랜 맛집 '바람막이'가 문을 닫으며 함께 일하던 아들 민식씨가 바람막이 대신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한 가게다. 중요하고 의미있는 날마다 바람막이를 찾던 이들이 사라진 맛집의 그리운 기억을 미각으로 깨운다.
부모님의 세월이 축적한 경양식 돈가스의 역사를 잇는 민식씨의 각오는 열심을 다하는 모든 과정에 담겨있다. 돈미정의 방식으로 펼쳐 보이는 경양식 돈가스의 맛과 방향이 또 다른 손님들에게 추억의 맛으로 켜켜이 쌓인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