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배제에 대한 항의로 김영환 충북지사가 삭발을 했다. "나를 컷오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충북도민뿐"이라며 김 지사가 올린 삭발 영상은 김 지사의 강한 결기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시큰둥하다.
삭발이라고 했지만 두피가 보이게 머리를 민 완전 삭발(削髮)이 아니다. 이발사가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날린 후 가위를 이용해 스타일을 정리했으니 삭발보다 버즈컷(Buzz cut)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을 크루컷(crew cut)으로 통칭한다. 이를 세분하면 짧게 반삭으로 민 버즈컷과 앞머리를 길게 남긴 아이비리그 컷 등으로 나뉜다.
머리카락을 10mm정도 남겨놓고 민 버즈컷은 장년층에겐 눈에 익은 머리모양이다. 80년대 이전 남자 중, 고등학생들이 학교 두발규정에 따라 이런 형태의 반삭을 하고 다녔다. 중국 남성들도 비슷한 스타일의 머리를 많이 하는데 물이 흔치않아 머리를 감기 힘든 사정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통과 얼굴형이 드러나는 반삭 스타일이 어울리려면 두상이 예쁘고 모발에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뒤통수가 납작하고 머리카락에 힘이 없는 나이든 남성에겐 영 폼이 나지 않는 스타일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외치며 머리카락을 없애려 이용원에 간 김영환 지사의 삭발 투쟁에 대해 광장이 아닌 이발소에서 삭발하는 것은 처음 본다는 평들이 많았다. 공천배제 수모를 참지 못해 머리카락을 날린 김 지사의 답답하고 분한 심정보다 머리를 미는 모습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항의와 투쟁의 수단으로 정치인들은 단식과 삭발을 선택한다. 배고픈 단식보다 신체적 고통이 덜한데다 시각적 효과가 높기에 삭발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목숨을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모든 것을 내던지겠다는 절박함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머리카락에 대한 상징성이 많이 약해진 요즘엔 삭발효과가 많이 퇴색했다. 너도나도 삭발을 하는 통에 식상한 면도 있다. 그래서 투쟁이라 쓴 삭발시위를 퍼포먼스로 읽게 된다.
정치인 중 가장 먼저 삭발시위를 감행한 사람은 박찬종 전 통일민주당 의원이다.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김영삼과 김대중이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분열하자,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박찬종은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며 통합을 촉구하는 삭발시위를 벌였다.
같은 당 소장파 의원들과 집단 삭발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찬종만 대표로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삭발했다. 삭발호소에도 불구하고 단일화가 무산되어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박찬종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여성 정치인이 삭발을 하면 이목이 더 집중된다. 2013년 11월,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이 정부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해 집단 삭발했을 때 김재연,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이 여성 국회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삭발했다.
2019년 9월 10일엔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한 뒤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숙향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이어서 삭발식을 했다. 머리카락 한 올에 목숨을 거는 일반 여성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용단이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내린 컷오프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첫 심문에 출석한 김영환 지사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파이팅이 넘쳐 보인다. 군인처럼 짧은 머리 스타일이 한몫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