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의 등에 귀를 대고 망치를 드는 일은 신의 잠꼬대를 훔치는 도굴에 가깝다. 한때는 하늘을 향해 푸른 문장을 써 내려갔을 나무들은 이제 적당히 몸을 말린 채 묵직한 침묵으로 누워 있다. 바싹 말라 비틀어져서도 안 되고, 너무 축축해서도 안 되는 그 절묘한 건조의 시간. 종균이라는 하얀 씨앗이 살점 속으로 파고들어 제 집을 짓기에 딱 알맞은 적당한 온기 속에 나무는 죽음 이후의 생을 준비한다.
원목 재배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기보다, 나무의 몸을 빌려 허기를 채우는 고약한 입맛에 가깝다. 2년 전 전기드릴로 나무의 몸에 수천 개의 구멍을 낼 때 그것은 가벼운 타격이 아니었다. 나무의 혈관 속에 낯선 전율을 수혈하는 일이었고 종균이라는 이름의 하얀 씨앗을 박아 넣는 행위는 사후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눕혀두었던 나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또 어떠한가. 죽은 짐승의 시체를 일으켜 세우듯, 묵직한 원목을 하나하나 세워 서로의 어깨를 기대게 할 때 내 허리에서는 뚜둑 하고 낡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 사람들은 이것을 계절의 시샘이라 부르지만 참나무 곁에 서 있으면 알게 된다. 이건 시샘이 아니라 아직 깨기 싫은 봄의 질긴 잠투정이라는 것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봄은 껍질 안쪽 깊숙한 그늘에 숨어 몸을 웅크리고 있다. 나는 그 고집스러운 잠을 깨우기 위해 망치를 든다.
땅, 땅, 땅—.망치의 타격음이라기보다 주문에 가깝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내가 내뱉는 무명 시인의 시 구절 같은 혼잣말이 진동이 되어 나무의 골을 때린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울리는 진동은 2년 동안 참아온 기나긴 기지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나무의 겨드랑이와 등짝에서 동그란 귀들이 쫑긋 솟아오른다. 그것은 화려한 꽃이라기보다, 잠에서 막 깬 짐승이 크게 내뱉는 하품처럼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 하품은 곧 경이로운 꽃의 형상을 띤다. 하얀 살이 터져 구름무늬를 만드는 백화고 검은 빛깔 속에 깊은 숲의 향을 품은 흑화고 그리고 동고와 향고에 이르기까지 나무가 몸의 진액을 다 짜내어 피워낸 이 꽃들은 꾹꾹 눌러 참았던 검은 혓바닥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몸을 깎아 꽃을 빚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노동임을 증명한다.
햇살이 적당히 불려 놓은 시간은 이제 그늘 아래의 뜨신 밥이 된다. 망치질에 잠이 깨 버섯을 내어준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잠시 쪼그려 앉아 쉰다. 나를 엿보던 꽃샘추위라는 얼룩 고양이가 슬그머니 파도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산 너머로 도망치는 것이 보인다. 사람은 사람으로 부족해 가끔 죽은 나무의 등에 귀를 대거나 망치질 몇 번으로 신의 잠꼬대를 훔쳐 오기도 한다.
긴 침묵을 뚫고 나온 버섯들은 지나치게 겸손해서 우리가 따낼 때 내는 작은 소리마저 마음이 죽어가는 소리처럼 서늘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괜찮다. 마음도 시간을 좀 줘야 하니까. 속옷을 말리듯 슬픔을 말리고 다시 그 자리에 새살 같은 버섯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생의 본질이니까.
나는 오늘 다시 망치를 든다. 아직 잠투정 중인 참나무들의 뒤통수를 향해 일어나라, 봄아. 내 입속에 든 비린 향기가 다 마르기 전에 네 하품 섞인 쫄깃한 꽃들을 내게 좀 나누어다오. 아무래도 쇠뭉치 속엔 잠든 짐승을 깨우는 발톱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이 고약한 도굴이 끝나고 나면 내 안에 숨은 가장 향기로운 백화고 하나를 신의 식탁 위에 몰래 되돌려 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의 모든 시련은 그 비밀스러운 꽃을 피워내기 위해 신이 내리치는 다정한 망치질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