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보이지 않는 경로와 윤리적 착시

2026.03.23 14:12:06

이한솔

프로덕트스토리지 대표

우리는 옷을 고를 때 디자인과 가격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이라는 가치도 중요한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옷이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도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의류는 대부분 하나의 나라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면화는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지배되고, 원단은 중국에서 생산되며, 봉제는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전세계를 돌며 완성된 제품은 다시 소비가 이루어지는 국가로 이동한다.

이처럼 의류 산업은 여러 지역을 거치는 글로벌 공급망 위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이 경로가 소비자의 시선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경로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보이지 않는 경로는 때로 우리의 판단을 단순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환경' 혹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기준을 통해 옷을 고른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 기준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까지 함께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 친절한 선택이 현실까지 닿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생산되고 가장 많이 입혀지는 면, 이를 생산하는 면화 재배에는 매우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개 농업이 환경 변화에 영향을 준 사례로 꾸준히 보고되어 있는데, 아랄해 유역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호수였던 이 지역은 1960년대 이후 관개 농업, 특히 면화 재배를 위해 강물이 대규모로 전환되면서 급격히 축소되었다. 그 결과 호수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고, 일부 지역은 사실상 사막화되었다. 이 변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는 옷의 소재가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그 영향 역시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염색 가공 과정에서 화학 물질이 사용되고 관리 수준에 따라 수질 오염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대부분 생산 지역에서 일어나니, 소비자는 이를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정보만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 판단이 때로는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착시가 만들어진다.

노동의 문제 역시 비슷한 구조 안에 있다. 의류 생산이 집중된 일부 국가에서는 낮은 임금과 노동 환경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2013년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는 이러한 현실을 국제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이 건물은 여러 의류 공장이 입주해 있던 곳으로, 붕괴 전날부터 건물 균열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이 계속되었다. 다음 날 건물이 무너지면서 1,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산업 재해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의 공급망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 책임이 얼마나 분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후 여러 브랜드와 기관들이 공급망 관리와 안전 기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지만, 개선 수준은 국가와 브랜드에 따라 차이가 크며 이 역시 생산 과정 전체를 소비자가 투명하게 확인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패션 산업이 생각보다 넓은 경로 위에 놓여 있고, 그 경로가 쉽게 보이지 않는 구조라는 점이다. '윤리적'이라는 말은 하나의 기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요소가 얽혀 있는 과정에 가깝다. 소재, 생산 방식, 노동 환경, 그리고 유통 구조까지 그 어느 하나만으로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윤리적 패션은 완벽한 선택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경로를 인식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옷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영향이 남았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일. 이 질문들이 쌓일수록, 우리는 조금 더 구체적인 선택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이전보다 조금 더 현실에 닿아 있을 것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2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