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이었네

2026.03.18 14:05:17

김순덕

수필가

전쟁으로 중동 지역에 고립됐던 우리 국민 200여 명을 태운 대한민국공군 수송기가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조국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TV로 지켜보는 나의 마음도 뭉클했다. 며칠 전에도 두바이에 발이 묶여있던 우리나라 단체 관광객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방송되었다. 그들의 표정은 장시간 이동으로 인한 피로와 불안한 상황을 겪은 긴장으로 지쳐 보였지만, 무사히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가족들을 말없이 얼싸안는 장면부터 달려오는 손주들을 끌어안으며 눈물짓는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마음고생들이 화면을 뚫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친구가 딸과 함께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날은 기분 좋게 화창한 날이었다. 딸의 직장 사정상 이번에 휴가를 써야 했고 소중한 휴가를 엄마와 함께하겠다는 그 효심에 감동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 동안 그녀가 즐거운 추억을 많이 담아오길 바라던 중,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며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갑자기 터진 전쟁에 들려오는 소식은 친구가 경유하는 두바이도 공격받아 하늘 문이 닫혔다고 한다. 그 뉴스를 접하는 순간 나는 갑자기 그녀의 귀국 날짜가 언제였는지 헷갈렸다. 어제였던가· 오늘이었던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음만 계속될 뿐 친구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카톡을 남기고, 문자도 보냈다. 답이 없다. 순간 나는 불안감이 확 올라오면서 안절부절못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참을 핸드폰 액정만 쳐다보던 나는 그녀의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친구의 여행을 알고 있는 지인도 그녀의 자동차가 여행 떠난 후부터 오늘까지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 걱정 중이라고 한다. 하여, 늦은 시간이지만 인터폰을 통해 집에 있을 그녀의 남편에게 소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잠시 뒤, 친구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떴다. 나는 단숨에 전화를 받았다. 대뜸 어디냐고 묻는 내게 그녀는 집이라는 대답과 함께 핸드폰이 무음으로 되어 있었다며 미안해한다. "다행히 어제 늦게 집에 돌아왔어. 전쟁 난 것도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알았지 뭐야. 우리가 탄 비행기가 마지막으로 뜨고 나서 두바이 하늘 문이 닫혔다네"상황이 상황인 만큼 잘 다녀왔다고 자신이 먼저 알려야 했는데 짐 정리하고 시차 적응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며 미안해하는 친구에게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아녀, 잘 돌아왔으면 됐어. 그것만으로 정말 됐어."

친구는 빡빡한 패키지 일정과 그때까지만 해도 두바이가 이란의 공격을 받기 전이라서 난리가 난 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다. 만약에 알았더라면 위험지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불안에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며 몸서리쳤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가 보다며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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