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이야기-활화산처럼 타오르다 간 작은 거인 최욱경

2026.03.12 17:40:45

최욱경, 'Untitled' (When the Time Comes)'

ⓒ연합뉴스
최욱경(1940~1985)이라는 작가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4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서 서양화 실기를 담당했던 이반(1940~ 1977국전 대통령상 수상)교수라는 분이 계셨다. 그 교수님은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셨는데 덕성여대 최욱경 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생긴 자리로 옮겨 가셨다. 그때 최욱경이라는 작가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러다 최근에 L수필가가 '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글감으로 이용하라고 '최욱경 관련 SNS'를 보내오면서 최욱경을 40년만에 소환하게 됐다.

최욱경은 출판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대가들에게 미술교육을 받은 금수저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끼니를 걱정하던 1950년대에, 그 당시 최고의 화가 김기창(1913~2001, 홍익대 교수 역임)과 박래현(1920~1976, 성신여대 교수 역임)의 부부화실에서 그림 과외를 받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화여자중학교에서는 김흥수(1919~2014, 덕성여대 교수 역임)와 장운상(1926~1982, 동덕여대 교수 역임)에게, 서울예고에서는 문학진(1924~2019, 서울대 교수 역임), 정창섭(1927~2011, 서울대 교수 역임), 김창렬(1929~2021, 물방울 작가) 등에게 지도받는다. 1959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가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대학 3학년 때에는 한국미술협회전에서 '정물'로 국무총리상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는 반추상 작품으로 입선하는 등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196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서양화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조각과 도자기를 배운다.

이후 미국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 영남대학교와 덕성여대에 있으며 교수와 작가의 길을 병행한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초기에는 추상표현주의 계통의 그림을 그리다가, 1979년 귀국 이후 대담한 선과 의도된 색채가 주는 강한 리듬감과 운동감을 통해 작가의 열정과 사유, 철학 등을 표출했다.

자신만의 독자적 양식을 구축하던 때에 조지아 오키프의 영향을 받고 이를 자기화했으며, 한국의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와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구사하는 고유의 능력으로 독자적인 색채 추상화의 양식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끝없는 호시심과 기대를 갖고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한다. 내 그림들은 그러한 추구의 결실이다. 나는 가끔 그림이 창조되는 과정이 내 생활과 꼭 같다고 느낀다."고 말한 최욱경은 그림뿐만 아니라 시(詩)를 썼던 감성이 풍부했던 작가였다.

1965년에는 영문 시집 '작은 돌들'을 출간해 문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2년에는 '엘리스의 고양이'를 비롯한 시 45편을 수록한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을 출간한다.

최욱경은 평소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을 휩쓴 '제2물결 페미니즘'을 현장에서 지켜본 그녀는 "뿌리 깊은 남성 위주의 관념을 어느 때인가 탈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자들 자신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고, 이것은 '남성과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힘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일이다. 여권신장은 헌법을 고쳐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해결점은 우리 여성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에서 볼 수 있는 당당함이 있었다.

생전 그의 여의도 작업실 벽엔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김영태는 "157cm의 작은 키, 43kg의 체중으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500호짜리 대작을 그리고 있는 최욱경을 보면 '화산 같은 여자'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어디서나 '비주류'였던 최욱경을 한국 언론과 평단에서는 "한국 최대의 그림을 그린 조그마한 아가씨", "전혀 여성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그림을 그려내는 여류"로 불렸다.

남성 중심의 추상 화단에서 낭만적인 성격의 독신 여성이라는 이색적인 존재였다

술과 담배를 즐기고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이루던 그녀는 심장마비로 죽기엔 아까운 나이인 45세에 활화산의 불을 꺼 버린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을 확인하듯이..

그녀의 친구들과 제자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화가를 기리며 다양한 추모 전시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장미꽃으로 뒤덮였던 애틋한 장례식과 추모 모임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 후 편견과 싸우며 끝없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했던 여성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갤러리에서 열렸다.

한국 추상회화의 전설, 저평가된 여성 작가, 스스로를 태우면서 불꽃처럼 살다 간 천재, 이제는 제대로 조명돼야 할 작가이다. 그림이 삶의 전부였던 그녀가 짧고 굵게 살다 간 것이 많이 아쉽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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