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관객 영화감독 타이틀을 얻은 장항준은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차마 꺼내기 힘든 구지레한 속사정이 그의 입을 통하면 즐거운 에피소드로 변한다. 아무 말이나 던져도 밉지가 않다. 심지어 혀를 찰만한 자랑질조차 거슬리지 않는다.
그의 이름 앞에 잔망스럽다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본래 잔망스럽다는 '보기에 몹시 약하고 가냘픈 데가 있다'거나 '태도나 행동이 가벼운 데가 있다' 또는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는 뜻의 형용사다.
그런데 어리고 약한 것이 얄밉도록 똑똑해서 되바라져 보인다는 의미로 쓰이는 부정적 표현 '잔망'이 장항준과 결합되는 순간 희한하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변해버렸다.
시도 때도 없는 잔망질에 귀여운 장꾸미를 가진 장항준의 이름을 아예 '잔망준'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찐 팬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판이다. 지나치게 영악해서 밉상스러운 이미지의 잔망이 귀엽고 앙증맞으며 얄미운 매력을 가진 잔망미로 변한 것이다.
소설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에 '잔망스럽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소년은 소나기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자 좋아하는 소녀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넌다. 소년의 등에 있던 진흙 얼룩이 업혔던 소녀의 스웨터에 닿아 흙물이 들었다. 그리고 소녀는 죽는다. 소설의 말미에서 소년의 아버지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고…."
소설 소나기에서의 잔망스러움이 잔망미로 의미가 변할 줄은 몰랐다.
요즘 장항준은 거의 날마다 각종 예능에 출연하여 특유의 입담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면 왜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알게 된다.
1969년생 장항준은 우리 나이로 쉰여덟의 기성세대 남자다. 그런데 전혀 꼰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냥 걱정 근심 없는 해맑은 소년이다. 꼰대 같지 않은 그가 꼰대질을 할 리 없다.
고리타분한 자신의 주장을 남의 머리에 집어넣으려 드는 사람을 꼰대라며 비웃는데, 이러한 꼰대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이 '꼰대 6하 원칙'이다. 전형적인 꼰대화법을 Who, What, Where, When, How, Why로 세분했다.
Who는 "내가 누군 줄 알아?" What은 "네가 뭘 안다고?" Where는 "어딜 감히" When은 "왕년엔 말야", 혹은 "우리 나이 때엔" How는 "어떻게 내게 이래?" Why는 "내가 그걸 왜?" 다. 시건방진 지적질 같아 기분 상할 수 있지만 조목조목 새겨보면 '나도 혹시?' 싶어 반성이 된다.
'꼰대의 6하 원칙'중 가장 원성 높은 표현은 "내가 누군 줄 알아?"다. 꼰대어의 지존으로 듣는 사람을 몹시 불쾌하게 긴장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다음으로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함을 내세우는 "어딜 감히"가 꼽힌다.
"왕년에"는 자제와 자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다. "어떻게 내게"는 '어딜 감히'와 비슷한 맥락의 우쭐거림이며, "내가 그걸 왜·"는 무관심하고 나태한 꼰대의 정석을 보여주는 어이상실 말투다.
장항준 감독은 첫 촬영 때부터 비하와 폭언이 일상인 꼰대스런 촬영 현장에서 헤드 스태프들에게 '고성금지'를 요구했단다. 하지만 잔망스런 장항준이 뱉는다면 고성 섞인 꼰대어도 들을 만할 것 같다. 옹골찬 리더의 내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