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대정건설(주) 대표, 세계직지문화협회 회장
오늘은 양력 3월 3일, 음력으론 1월 15일인 정월 대보름이다. 예전엔 보름 전날인 어제를 작은보름, 보름인 오늘을 큰보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상원(上元)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엄마가 준비해 놓은 부럼 깨기를 했었다. 땅콩·호두·밤·잣 등의 딱딱한 열매류를 깨물어 먹었던 것이다. 그러면 일 년 동안 부스럼이 생기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른들은 귀밝이술이라고 술을 한잔씩 드셨다. 그 술을 마시면 일년내내 귀가 밝아진다는 것이었는데., 부럼깨기도 귀밝이술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매서(賣暑)'라고 하는 '더위팔기'를 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을 불러서, 그가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면 일년 내내 내 더위가 상대방의 더위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대보름날 밤이면 집 뒤의 학교 운동장에서 쥐불놀이를 했다. 빈 깡통에 숯과 장작개비 또는 옷가지나 솔가지 등을 넣어 불을 붙인 것이다. 그리곤 깡통을 매단 긴 철사 줄을 빙빙 돌리며 놀았던 것이다. 컴컴한 밤에 혹시 불티가 튀어 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망우리 찡우리'를 반복해서 외치곤 했다. 그런데 정작 '망우리 찡우리'의 뜻을 알지 못하며 지금도 궁금한 것이다. 쥐불놀이를 대개 정월부터 대보름 사이에 했었는데, 논두렁의 잡초와 병해충을 없애며 그 재가 거름으로 쓰임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해의 액운을 태워 없애며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라고도 했던 것이다.
지난 '70년대까지도 지방에서는 대보름날에 동제(洞祭)를 지냈다. 동네별로 줄다리기와 윷놀이 등을 하며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름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해서 억지로 잠을 참기도 했었다. 뒤늦게 잠이 들었다가 깨면, 제일 먼저 거울로 달려가 눈썹을 확인했던 것이다. 또한 정월 대보름날에는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약밥이나 오곡밥에 여러 가지 묵은 나물과 된장찌개로 식사를 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큰 그릇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나물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에는 팥죽을 먹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저녁 식사 후 집 뒤안 장독대에서 치성을 드렸었다. 팥시루떡 위에 정화수(井華水)를 올려놓고 기도를 하곤 하셨다. 두런두런 작은 소리로 달맞이 기도를 하셨는데., 기도 내용은 들리지가 않았고 궁금하기도 했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전통(傳統)'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해 온 고유의 풍속으로, 전통적인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행해지던 여러 행사들을 통칭한다고 한다. 전통이나 세시풍속이라고 해서, 무조건 답습하거나 숭상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현실에 맞지 않거나 적용 불가한 관습 또는 행사라면 굳이 반복 추종할 이유가 없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씨줄과 날줄을 면연(綿延)히 연결하는 고유의 문화인자 중 하나라면 이 또한 굳이 부정하거나 폄하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경쟁력과 차별성의 선연(鮮然)한 DNA 중 하나라면, 계승·발전시킬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