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모범, 미범 김영회선생님

2026.02.24 14:49:03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지역 문화계의 큰 별 김영회선생님이 타계하셨다. 선생님께서 주신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본다. "류작가님, 근하신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미범(未凡) 김영회" 후배의 건강을 당부한 어른의 마지막 덕담이 먹먹하다.

선생님의 호는 평범함에 못 미친다는 미범(未凡)이다. 겸손히 몸을 낮추셨지만 선생님처럼 후배들에게 귀감이셨던 분이 드물었다. 아름다운 모범이었던 그 분을 미범(未凡)이 아닌 미범(美範)으로 칭해야 마땅하리라.

선생님과 같이 했던 술자리는 늘 낭만이 넘쳤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가 왠지 아깝게 여겨지는 오월의 저녁이었다. 예정된 약속이 아니었으나 좋은 이들이 그곳에 있다는 충분한 이유로 예닐곱 명의 술꾼이 재래시장 대폿집에 모였다.

얼떨결에 부름에 응해 술자리의 말석을 차지하게 된 나는 왁자지껄한 시장 대폿집의 소음에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사람냄새 나는 정겨운 분위기와 금방 친숙해졌다.

'백 년 동안에 천 번은 취해야 하리.

한 잔 술이 만고의 시름을 능히 씻을 것이니.'

돌려가며 마신 막걸리에 주흥이 도도해진 미범 선생님이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시 한 수를 써 내렸다.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시름 녹이리(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라는 이백의 권주가 장진주(將進酒) 느낌의 시였다. 이백의 호방한 풍류가 선생님에게서 느껴졌다.

이 시를 지을 무렵 천재 시인 이백은 어이없게도 과거에 낙방해 몹시 좌절한 상태였던가 보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울분을 토로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천 가지 근심을 덜고 싶었던 이백의 답답한 심정이 장진주에 엿보인다.

그러나 기개가 살아 있던 이백이다. 하늘이 내게 준 재주는 반드시 쓰일 것이며(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돈은 써버리더라도 다시 생겨나리라(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부래)고 호언했으니.

결국 이백은 하늘이 준 재주로 벼슬을 받는다. 발해가 당나라 현종에게 선전포고 서신을 보냈는데, 내로라하는 대신들 가운데 한자로 대충 번안한 발해 문자를 해독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 이백의 시에 반해 시인을 시선(詩仙)이라 존경했던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을 조정에 천거했다.

그러나 이백은 과거 시험에 낙방한 처지라 자신은 외교문서를 다룰 자격이 없다고 튕겼다. 다급해진 현종은 이백에게 한림학사의 직함을 내렸다. 우쭐해진 이백은 자신을 과거시험에서 낙방시킨 시험관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기게 하고 발해문서를 해독했다고 한다.

미범 선생님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이처럼 왁자한 술자리에서 두루마리 휴지에 즉흥시를 쓸 수 있는 풍류를 누가 흉내 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백도 인정할 만한 시흥을 지닌 선생님이 계시기에 더욱 정겹고 귀한 자리였다.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이 쓴 시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낭송했다.

'백 년 동안 천 번은 취해야 하리.

한 잔 술이 만고의 시름을 능히 씻을 것이니.'

멋진 노래다. 그러나 시름을 씻으려고 마신 술이 번민을 더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취할 일 또한 일생에 천 번뿐이겠는가. 다만 술을 마실 핑계가 있을 때 마음을 나눌 그 분이 필요하다. 그러한 선생님과 함께 언제라도 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다시 만나지 못할 시간들을 그리며 미범 선생님께 술 한 잔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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