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은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지나며 흐르기에 그 이름을 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큰 마을 주변을 지나는 하천의 이름은 그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에 하나의 하천이라도 지역을 지날 때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가 발전하여 생활 영역이 크게 확장되면서 여러 개의 지역적 이름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하천의 이름이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음성, 진천, 괴산, 청주 등 여러 지역을 흐르는 하천(지금의 미호강)을 관리하기 위하여 이름을 하나로 정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지역에 따라 반탄(磻灘 : 반여울, 지금의 증평 보강천), 오근진(梧根津 : 까치내인 작천 건너편 나루터), 작천(鵲川 : 현재 까치내로 불림), 진목탄(眞木灘 : 미호천과 병천천이 만나는 지점), 망천(輞川 : 현재의 석남천으로 추정), 부탄(浮灘 : 청주시 강내면 태성리 인근 동막천, 月灘이라고도 함), 미곶(미호천과 조천이 만나는 부근), 동진(東津 : 금강과 만나는 합강머리 부근)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 왔는데 일제는 미호천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였고, 해방 후에는 미호천의 명칭이 최상류인 음성군 삼성면까지 확장되더니 2022년 7월에는 미호강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진천군은 지명에 '천(川)'이 쓰일 정도로 하천이 발달되어 있다. 농다리가 있는 세금천은 미호강의 본류가 되어 그 이름을 잃었지만, 백곡천을 비롯하여 한천, 성암천, 초평천, 장양천 등이 지방하천으로서 미호강으로 흘러가는 지류들이다.
그 중에서도 진천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하천은 미호강과 미호강의 지류이면서 진천읍을 가로지르는 백곡천(栢谷川)이다. 백곡천은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서쪽 서운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용덕리를 지나 석현리에 이르러 서쪽 엽둔재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하고 계속 동남쪽으로 흘러 진천읍 건송리에 이르러 진천저수지(일명 백곡저수지)를 이루고 동쪽으로 꺾여 진천읍을 지나 문백면 북동쪽 살피를 거쳐 초평면 경계에서 미호강으로 흘러가 소두머니(우담)를 이룬다. 소두머니는<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과 <상산지(1932년>와 같은 옛 문헌에는 '우천(牛川)'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백곡천'이라는 이름은 1918년에 발행한 '5만분의 1 지형도'와 1927년에 공포한 '조선 하천령' 등에 그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제에 의하여 지어진 이름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백곡천을 지역 주민들은 백사천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1951년 개교한 진천중학교 교가의 가사는 아직도 첫 소절이 '백사천 긴 내처럼 ∼'으로 시작되며, 1965년 개교한 진천여자중학교와 진천상고의 교가에도 '백사천 맑은 물결∼'이라 표기하고 있다. 백곡에서 흘러오는 하천이니 백곡천이라 부르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백곡천이라 부르지 않고 왜 백사천이라 했을까·
하천의 이름은 발원지의 지명을 따거나, 아니면 다른 하천과 합쳐지는 등 하천의 흐름이 변화되거나 연못, 저수지 등 하천의 형태가 바뀌는 지점의 지명을 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곡천은 백곡에서 진천읍 사송리까지 흘러 진천저수지(백곡저수지)를 이루는데 사송리는 사정리와 상송리를 병합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백곡저수지는 1949년에 축조되었는데 예전에 이곳에 하천물이 모이는 못이 있어 '사정(沙井)'이라 불렀을 것이다. '사정(沙井)'이란 '모래샘' 즉 '큰 샘'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발원지인 백곡과 하천물이 모이는 지점인 사정리(沙井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백사천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해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조상들이 불러오던 지명인 '우천(牛川)'은 백곡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발원한 물이 '우담(소두머니)'에서 일시 저장이 되므로 '우담을 이루는 하천'이라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우천'이라 한 것이 아닐까·
광혜원면 구암리에서 발원하여 금곡리에 이르러 용소를 이루는 하천명을 구암천이라 부르는데 옛날에는 '용소천'이라 한 것도 하천의 지명을 명명하는 같은 예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