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정정당당한 선수들의 자세, 예측할 수 없는 승부(勝負)의 짜릿함이다. 그런 일이 최근 있었다.
지난 2일 우승 상금 1억 원이 걸린 우리나라 프로 당구 'PBA 챔피언십' 결승전. 아쉽게도 외국 선수끼리 맞붙었다. 세트 스코어 3:3에서 마지막 7세트 11점 경기. 스페인 '산체스' 선수는 먼저 4점을 내고 이어서 1점을 더 보탰다. 갑자기 산체스는 심판도 인정한 점수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다. 심판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득점 하나를 취소했고 공격권은 상대 선수에게 넘어갔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다. 심지어 방송 해설자도 영문을 몰라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산체스는 큐로 공을 두 번 터치하는 파울을 범해 이를 알린 것이다. 이후 흐름을 뺏긴 산체스는 7세트를 졌다. 우승한 베트남 선수는 산체스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고, 산체스는 환한 웃음으로 축하했다.
심판도 몰랐던, 선수 본인만 알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산체스의 행동이 당연한 것인데도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의 삶, 그가 자라온 환경이 서슴지 않고 정정당당한 선택을 하게 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날 밤 나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뭔지 똑똑히 봤다. 경기 후 산체스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잠들기 전에 생각이 날 것 같았다. 파울로 이득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의 발로(發露)였다. 비록 우승은 놓쳤으나 그는 우승 그 이상의 빛나는 준우승자가 됐다.
스포츠가 마냥 기쁨과 감동을 주진 않는다. 금지약물 복용, 승부 조작, 비양심적인 반칙, 심판의 편파판정 등으로 깨끗해야 할 스포츠는 꽤나 오염됐다. 남보다 더 잘하려는 욕심이 앞서고 금전에 현혹된 결과다. 빙상경기 중 하나인 '쇼트 트랙'은 무리한 추월과 '나쁜 손'이 난무하여 스포츠로서의 매력이 반감됐다. 요즘 인기 있는 배구는 어떤가. 블로킹을 할 때 손에 닿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종종 비디오 판독을 한다.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사자인데 대부분 양심선언을 않고 판독이 끝날 때까지 눈치를 살핀다. 어차피 들통 날 일을 숨기고 있어 보기 민망하다. 경기의 흐름을 끊기게 했으니 '경기 진행 방해죄', 스포츠 정신을 위배했으니 '양심 불량죄'를 적용하여 벌점을 주면 어떨까?
'2026 밀라노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10일 쇼트 트랙 경기에서 우려했던 사고가 났다. 혼성계주 준결승에서 우리나라는 3등으로 달리다가, 넘어진 미국 선수에 걸려 쓰러졌다. 결국 1, 2등이 올라가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심판에게 구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넘어질 때 3등이었기 때문이란다. 여러 바퀴가 남았는데도 결과를 예단한 나쁜 규정의 희생양이 됐다. 하루가 지나 미국 선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하는 시늉을 한 반면 사고를 당한 김길리 선수는 '쇼트 트랙은 변수가 많은 경기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고, 익숙하다'는 대범한 자세를 보였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도 선수가 가져야 하는 품격이다.
몸싸움이 격렬한 종목에서 판정에 불복하거나 비겁한 반칙이 많다. 이런 것에 눈살이 찌푸려져 요즘은 오로지 힘과 기술을 겨루는 육상, 수영 등 기록경기에 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낀다. 사람들은 누가 이기느냐를 떠나서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 졌지만 잘 싸운 '아름다운 패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산체스 선수는 비록 경기는 졌으나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아 잠을 편히 잘 수 있었으니, 그는 승자 못지않은 박수를 받고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