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세이버 인증서

2026.01.28 13:50:31

이정균

시사평론가

지난해 9월 어느 날 늦은 밤, 동네 길을 걷다가 차도와 인도의 경계 지점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검은색 반바지와 반팔 차림의 남성이 몸은 아스팔트 위에 벌렁 누운 상태로 왼쪽 다리가 차도보다 조금 높은 인도에 걸쳤고 흰 양말을 신은 그 발목이 안전펜스 틈에 낀 상태였다.

***119 구급대의 체계적 현장조치

자세도 그런데다 어슴푸레 보이는 얼굴이 거무스름해 첫 인상은 영락없이 술에 취해 넘어진 취객으로 보였다. 예전에는 나도 술을 좋아해서 폭음으로 만취한 나머지 잠시나마 길거리 신세를 져 본 부끄러운 경험이 있는지라 112로 주취자 신고를 할까 생각했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술 취해 잠든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내는 특유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술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어깨를 흔들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불러 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약간 어두웠는데도 이게 눈이 돌아간다는 거구나 할 정도로 눈의 흰자위가 크게 보였다.

응급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자 갑자기 초긴장이 되며 마음이 급해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 119로 신고해 위치와 상황을 설명하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걱정이 앞섰다. 대한산악연맹이 발급한 등산 강사 자격증 소지자이긴 하나, 필수과목인 심폐소생술을 배울 때 마네킹을 이용한 실습으로 익혔을 뿐 심장이 정지 된 사람에게 실시하는 실제 상황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또 혹시 나의 심폐소생술이 잘못되어 부작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할 상태가 맞기는 한 건지 등 여러 가지 상상과 우려가 순식간에 얽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실제로는 짧았을 시간이 꽤 길게 인식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며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심폐소생술과 심장충격기를 이용한 처치가 반복됐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구급대원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더니 비가 오듯 쏟아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일정한 속도로 계속하는 모습에서 생명을 살리려는 간절함이 숭고하게 묻어났다. 그렇게 심폐소생술이 한참 이어졌다. 환자를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기 위해 출발할 때까지 두 대의 119 구급차로 출동한 구급대원들의 일사불란한 대응과 현장조치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책임감과 체계적 움직임이 그대로 나타났다.

몇 개월이 지나고 소방서로부터 하트세이버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했던 남성은 심장 관련 시술을 받고 회복되어 퇴원 후 일상생활에 복귀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마음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트세이버를 받을 만큼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의 작은 노력이 생명을 살리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것은 기쁘지만 현장에서 망설이지 않고 더 신속하게 119 신고와 심폐소생술을 했어야 한 건 아닌지, 유사한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최대한 빠르게 조치할 수 있는지를 자꾸 자문하고 다짐도 해 본다.

***생명 살리는 작은 노력, 심폐소생술

1월 15일 청주동부소방서에서 일반인 3명과 소방공무원 25명에 대한 '하트·브레인·트라우마 세이버 수여식'이 열렸다. 하트세이버는 심폐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또는 심장충격기 등을 활용하여 생명을 소생시킨 구급대원 등에게 수여한다. 브레인세이버는 급성 뇌졸중 환자, 트라우마세이버는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한종우 소방서장의 "생명을 살린 영웅"이라는 축사를 들으며 심폐소생술과 소방 조직의 중요성을 거듭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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