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문봉(文鋒)의 미술가들

2026.01.28 11:23:18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필자의 작업실에는 오래된 도록이 한 권 있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94년 5월에 무심미술관(관장 백광현, 청주고45회)에서 기획해 청주국립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전시도록이다. 이 전시회의 이름은 '청주고등학교 개교 70주년 기념 문봉전(文鋒展)'이다. 청주고 출신 32명의 작가들이 서양화, 한국화, 조소, 공예, 그리고 디자인 분야의 작품을 출품했다.

출품 작가들을 살펴보면 안영목, 이재호, 하선용, 박종근, 변상봉, 김재관, 김경화, 김지택, 장영주, 한석우, 성낙양, 안상수, 김식, 이병수, 이종목, 최선호, 김성훈, 서진수, 김성현, 김동조, 연광렬, 최선길, 권용식, 이성영, 이광우, 김흥수, 최익규, 박동균, 최윤용, 신익재, 송승근, 이일선이다.

청주고등학교 전경.

ⓒ이동우
이 전시회가 개최되고 30년이 흐른 2024년, 청주고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청주고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에서 또 다시 동문전을 개최한다.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한 작가는 안영목, 이재호, 하선용, 변상봉, 신영식, 김경화, 김재관, 김지택, 장영주, 김명택, 한희환, 안상수, 김 식, 박희종, 안상철, 박해순, 이종목, 최선길, 최익규, 김대중, 김종칠, 한승엽, 손동락, 임정한 등 24명이다.

개교 70주년과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통해 청주고 출신 작가들의 면모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다. 30년 사이에 32명에서 24명으로 줄어든 것은 주최 측에서 작가들을 많이 섭외하지 못했거나, 30년 사이에 붓을 꺾은 작가가 생겼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청주고 출신 작가 중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지면 관계상 어렵다. 그래서 작고한 작가들로 서양화 안영목, 한국화 이재호, 하선용, 변상봉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안영목 작가의 작품.

ⓒ이동우
안영목(1923~2012)은 청주고의 전신인 청주제1중학교를 18회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하다 목원대학교와 동덕여대 등에서 1982년까지 제자양성에 진력했고 이후에는 작품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1960년대까지 추상과 구상의 접점에서 형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1970년대는 '자연이 스승이다'라는 지론을 바탕으로 사생하며 한국의 풍경과 꽃을 주제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연작으로 발표한 '복사꽃 과수원'이나 일련의 풍경화들은 두터운 질감과 함께 속도감 있는 필선으로 화사한 색채를 연출하고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원숙한 경지에서 나오는 밀도감 있고 중후한 미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재호 작가의 작품.

ⓒ이동우
이재호(1927~2008)는 청주고의 전신인 청주공립중학교를 20회로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한국화의 대가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제자이다. 이 작가는 "누구나 똑같이 표현할 수 있는 상식적인 형태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의 작품이라는 자기 고백으로 객관화하는 것이 화가이다"라고 주장한 작가이다. 이구열 미술평론가는 "이재호의 한국화는 예술적 회화성이 풍부하고 필법과 화의의 독창성이 우수한 작가이다"라고 평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향토적 자연을 농묵, 담묵의 풍부하고 독자적인 스타일로 그린 작가이다. 인천교육대학(현 경인교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하선용 작가의 작품.

ⓒ이동우
하선용(1940~2020)은 청주고 31회로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청주여자사범대학(현 서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2005년 퇴임까지 후진 양성과 지역 미술계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그림은 화조도(花鳥圖)와 산수화 등 전통회화 기법을 중심으로 작업했다. 1980년대에는 밝고 화사한 진달래와 철쭉을 연작으로 발표해 '진달래· 철쭉 작가'로 불리워 지기도 했다. 이후 화풍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의 호방한 성격만큼이나 작품 또한 거침없는 붓의 터치를 구사했다. 하선용 작가의 따님은 필자의 대학 후배 하유미 작가이다.

변상봉(1942~2008)은 청주고 34회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경남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경남에서 활동했다.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이미지는 사람의 누드다. 이를 통해 생명과 존재에 대한 시공을 초월한 구도적 자세를 찾고자 했다.

2024년은 청주고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고 역사적인 해였다. 청주고등학교는 80년대 고교입시 평준화로 옛 명성은 퇴색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언론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을 수없이 배출한 충북을 대표하는 명문 고등학교다.

그러면서도 인문학을 중시하던 청주고등학교의 교육 정신은 우수한 미술인 외에도 원탑문학회를 통해 문학인을, 관악합주단을 통해 음악인을, 야구·육상·탁구부 등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다수 배출한 최고의 스포츠·문화·예술의 산실이다.

앞서 이야기한 동문전의 이름은 문봉전(文鋒展)이고 기숙사 이름도 문봉학사(文鋒學舍)이다. 문봉은 글월 문(文)자에 칼끝 봉(鋒)자로 최상 학문의 정점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 걸맞게 청주고 출신 젊은 미술작가들은 선배들의 빛나는 활약에 힘입어 세계 속에서 한국미술을 빛내는 동량(棟梁)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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