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배신

2026.01.20 14:10:28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볼 수 없는 얼굴 뒷부분을 가격 당했을 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한다. 폭행보다 배신의 의미로 굳어졌다.

영어식 표현의 배신은 뒤통수가 아닌 '등을 찌르는(Stab someone in the back)' 행위다. 믿는 사람의 등 뒤에 칼을 꽂는 야비한 술수로, 배신자를 등을 찌르는 놈(Back stabber)이라 부른다.

뒤통수를 치거나 등을 찌르는 행동은 공히 방심하고 있을 때 벌어진다. 생각지 않은 상대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피해자의 타격은 엄청나다. 더욱이 자신의 뒤를 살피라 맡겼던 부하에게 뒤통수를 공격당했다면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닐 것이다.

배신은 가까운 데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어찌 배신을 획책하겠는가.

권력자가 자신의 측근에게 뒤통수를 맞고 내뱉은 가장 극적인 탄식이 "브루투스 너마저도(Et Tu, Brutus)"다. 갈리아 원정을 통해 로마 영토를 넓힌 시저는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뒤 종신 독재관과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시저의 독주는 공화정을 고수하려는 원로원의 반발을 일으켜 비극으로 이어진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시저는 원로원 회의장에서 공화정 지지자인 14명 원로원 의원들에게 피습된다. 칼에 찔린 시저는 자신을 공격한 무리에 섞인 브루투스를 발견한다. 시저의 반대파들이 시저의 양자 브루투스를 회유해 황제 암살 계획에 가담시켰던 것이다.

제 살처럼 아끼고 사랑한 브루투스가 자신을 향해 칼을 빼든 모습을 발견한 시저는 항거할 힘을 잃고 만다.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절규는 셰익스피어가 1599년 발표한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등장한 대사다. 양 아들의 배신에 대한 시저의 절망을 한마디로 함축한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는 처절한 배신의 아픔을 나타낸 대명사로 남았지만 무수히 난자당해 쓰러진 시저의 마지막 외침은 아니라는 설이 있다.

'카시우스 디오' 등 고대 역사가들은 시저가 한마디 유언 없이 즉사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브루투스 너마저"란 대사는 믿었던 측근에게 당한 배신의 충격과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생히 전해준다.

정치헌금 수수혐의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김병기 의원에 대한 비위 의혹을 처음 폭로한 인물이 김 의원의 전 보좌진들로 밝혀졌다. 이들은 경찰 수사의 핵심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김병기 의원의 전 보좌관들은 지금 김병기의원이 받고 있는 범죄혐의 대부분이 모두 다 사실이기 때문에 충분히 입증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의 최측근에서 수족처럼 김 의원을 보좌하던 사람들이 거꾸로 김 의원을 공격하는 상황인 것이다.

양측의 갈등으로 인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데, 아무리 편을 들어주려 해도 김병기 의원을 두둔할 건더기가 없다. 부하직원들의 단체 대화방을 훔쳐보고 역정을 내며 무더기 해고한 경거망동도 한심하지만 재취업한 전 보좌진에 대한 인사 불이익 종용의혹 등은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찌질함의 극치다.

시저를 배신한 부르투스는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정의에서 시저를 죽였다"고 했다. 하지만 '정의로운 배신'이란 포장은 낯 간지럽다. '정의로운' 대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쯤이 더 낫겠다. 작금의 어지러운 폭로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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