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좌표

2026.01.20 14:06:46

남호순

시인·배바우도서관장

병실에 오래 머물다 보면 세상이 다른 좌표로 보이기 시작한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고 시간은 시계 숫자가 아니라 기침 횟수와 링거 한 병이 떨어지는 속도로 잴 수 있는 것이 된다. 병실은 안개 자욱한 골목 같다. 신음 소리는 옆 침대로, 건너 침대로 옮겨 다니며 사람의 이름을 대신한다. 이곳에선 누구나 3번 침대, 5번 침대로 불리고 이름은 점점 먼 데로 밀려난다. 하얀 침대가 줄지어 놓인 풍경은 멀리서 보면 질서 정연한 도표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는 각자의 실패와 후회 두려움 같은 것들이 얇은 이불 아래 구겨져 누워 있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빛을 쏟아내지만 그 빛은 이상하게 따뜻하지 않다. 오히려 차갑게 더 선명하게 몸 상태를 확인하게 만든다. 아, 내가 지금 이 정도구나'라는 현실이 수치 하나로 각인될 때 통증과 함께 마음까지 짓눌린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은 침대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디에 기대도 편치 않은 자세 어느 방향으로 돌아누워도 마음 한 귀퉁이가 늘 삐걱거린다. 그제야 깨닫는다. 통증은 몸만 쥐어짜는 게 아니라 자존심과 체면 버티던 세계관까지 함께 끌고 간다는 것을

링거는 투명한 절망처럼 떨어진다. 환한 색도, 독한 냄새도 없이 묵묵하게 한 방울씩 포기와 체념을 몸 안으로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걸 붙잡고 산다. 손등에 꽂힌 바늘이 아파도 '그래도 이게 나를 살게 해주겠지'라는 희미한 기대 하나 때문에 견디는 것이다. 링거를 뽑는 순간이 있다. 수치가 조금 나아졌거나 더 이상 붙잡을 이유가 없어서거나 어느 쪽이든 팔에서 빠져나가는 바늘은 늘 같은 쓰라림을 남긴다. 해방 같지만 동시에 허무하다. '이제 나 혼자 버텨보라'는 통보 같아서, 팔의 가벼움이 마음까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밤이 되면 병실은 다른 표정을 한다. 낮 동안 분주하게 오가던 발자국들이 사라지고 남는 건 숨소리 기계음 기침 몇 개뿐이다. 누군가 자다 깨어 화장실을 다녀올 때 슬리퍼 끄는 소리가 복도를 길게 긁고 지나간다. 그때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에서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한곳에 모여 서로의 고통을 엷게 나누고 있는 걸까. 어느 날 밤 빈 침대가 하나 늘어난다. 늘 누워 있던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의 기침소리가 병실 전체에서 쏙 빠져나간 것처럼 조용해진다. 하얀 시트와 베개는 새것처럼 팽팽히 정리되어 있고 그 위에 남아 있던 체온은 아무 기록도 없이 사라진다.

간호사에게 묻지 않는다. 어디로 갔는지, 언제 나갔는지, 퇴원인지, 다른 곳으로의 이동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는 순간 텅 빈 희망을 옆 침대에 눕혀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아서다. 어쩌면 모른다는 것도 이곳에서 허락된 작은 방어 기제일지 모른다. 아침이 되면 창밖으로 빛이 부어지듯 들어온다. 햇살은 병실 안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장 너머 단풍 든 나무들을 환하게 비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색이 짙어진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제 할 일을 한다.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생명력이 새삼 부럽다. 병실에서 배우는 것은 몸이 망가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고통은 늘 나에게만 절대적이고 유일하게 느껴지지만 한 발 물러서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부서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슬픔은 어느 순간 체념과 농담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과 섞여 버린다.

우리가 병실에서 배우는 것은 몸이 망가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고통은 늘 나에게만 크게 느껴지지만 한 발 물러서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부서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슬픔도 끝까지 순수한 슬픔으로만 남지 못하고 어느 순간엔 조금의 체념 조금의 농담 조금의 관성으로 섞여 버린다. 그리고 고통조차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게 될 때가 있다. 병원은 약과 수치로 나의 비명을 규격화하고 내가 괴로워할 권리마저 세심하게 관리한다. 측정 가능한 데이터가 되어버린 슬픔 곁에서 정작 나의 진짜 아픔은 차트 밖으로 밀려나 표류한다

병실에 있는 동안 삶의 좌표는 아주 단순해진다. 오늘 링거를 다 맞았는지, 열이 조금 내렸는지, 밤새 숨이 고랐는지, 창밖의 나무가 아직 잎을 붙들고 있는지. 거창한 계획이나 대단한 목표는 벽 너머로 밀려나고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눕고 일어나는 이 공간이 하나의 좌표처럼 느껴진다. 희미한 좌표, 그러나 분명한 자리 그 자리를 한 번이라도 깊이 경험하고 나면 병실을 떠난 뒤에도 우리는 안다. 어디에도 찍히지 않는 삶이 있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고통이 있으며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숨들이 어쩌면 다른 계절, 다른 사람의 삶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병실을 나온 뒤에도 환한 복도나 쨍한 햇빛 앞에 서면 그곳에 눕는 사람들을 잠깐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으로 중얼거린다. "오늘도 그곳의 밤이 너무 차갑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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