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이 되면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컴퍼스로 그린 동그라미 위에 제일 먼저 생활계획표를 짜던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새삼스레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은 새해를 맞아 마음먹은 걸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중이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학창 시절의 생활계획표는 늘 작심삼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다짐은 지키지 못할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생활 속에서 부족하거나 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며 격려하는 것이다. 변화를 시도할 이유와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새해. 그 새해가 벌써 일월의 중반을 달리고 있다.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풍경소리가 호들갑스럽게 새벽을 깨우고 창문 틈으로 휘파람 소리를 불어대는 매서운 바람 소리에 잠이 깼다. 일어나야 했다. 올해부터는 그동안 소홀했던 운동을 무조건 열심히 해 보자고 다짐했던 터였다. 지난해는 어깨 부상으로 거의 운동을 나가지 못했다. 체육관에 나갈 수 없다면 가까운 호암지라도 걷자고 마음먹었지만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나를 합리화시키며 실천하지 못했다.
배드민턴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친구는 배드민턴을 같이하자고 했다. 평소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에서 배드민턴 치는 모습을 본 나는 어디에서 만날까 묻자, 친구는 동네 배드민턴이 아니라고 한다. 클럽에 정식으로 가입하여 체육관에서 매일 치는 건데 조금 어려운 것은 새벽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남편을 출근시켜야 하는 가정주부가 선택하기에는 망설여지는 시간대였다. 하지만 친구도 해내는 일이 나라고 못 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배드민턴 새벽반에 입문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내 인생에 배드민턴이 가장 우선순위의 취미가 된 것이다.
배드민턴은 체력과 지구력, 순발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전신운동이다. 셔틀콕이 날아오는 속도와 각도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반사신경과 상대편의 심리를 간파해야 하는 전략적 사고까지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 지루하거나 싫증 나지 않았다. 셔틀콕을 향한 스매시는 근심을 날리고 드롭은 부드러움 속에 슬며시 넘어가는 여유를 주며 클리어는 힘차게 밀어붙이는 뚝심을 준다. 짝을 맞춰 코트 안에 들어가면 파트너에 대한 믿음과 배려는 인내를 동반한 삶의 자양분이 된다. 코트 안에서의 스릴 못지않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민낯으로 만나는 회원들과의 친밀감은 또 다른 정을 쌓게 한다.
새벽운동의 장점은 나만 부지런하면 남는 시간을 알차게 쓰는 매력이 있다. 남들이 이불속에서 뒤척일 때 조금 일찍 시작하는 하루가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만 몇 달 지나고 보면 몸이 먼저 기억해 알아서 잘 이끌어 준다. 하루의 시작을 운동으로 열고나면 뿌듯함과 성취감을 동반한 개운함도 있다.
어떤 운동이건 긴 세월 동안 써먹은 몸이 고장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처럼 주저앉지 말고, 올해는 고장 난 몸을 살살 달래 가며 새벽운동에 나설 것을 다짐해 본다.
그것이 배드민턴이든 걷기든 오늘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