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 근처를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은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직원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교육청 첫 출근 날이었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가 웃으며 물었다.
"저 기억나세요?"
낯익은 얼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기자로 일하며 몸에 밴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끝난 뒤에야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기억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잠시 스쳐 간 사람인지. 그 질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비슷한 질문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웃고 인사한 뒤 다시 업무로 돌아왔다. 하지만 질문이 쌓일수록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따라붙었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오래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농담처럼 스쳤다.
어쩌면 기자라는 직업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가 쓴 기사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는 기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의미를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이후로 나는 이 조직 안에서 어떤 존재로 남았는지, 이곳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동안 익숙하게 사용해 온 언어를 내려놓았다. 주장하고 지적하던 말들 대신, 관찰자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을 했다. 말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그리고 침묵이 때로는 가장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배웠다.
기자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지 2년여, 겉으로 보기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은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다. 리포터였을 때도, 기자였을 때도, 공무원이 되었을 때도 나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스물몇 살, 리포터로 일하던 시절 PD와 카메라 감독, 작가와 오디오맨은 늘 한 차로 움직였다. 현장에 나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내 이름 앞에는 언제나 '프리랜서'라는 말이 붙었다. 자유로웠고,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 모순된 감정은 내가 누리지 못한 세계를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정규직 방송기자가 되었을 때도 또 다른 경계가 있었다. 매체의 위계, 기자단의 안과 밖, 기자이면서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중의 위치. 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장을 뛰며 버틸 수 있었던 건, 함께 동분서주하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은 분명 내 삶의 일부였다.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간 동안에도 가끔은 여전히 경계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조직 내부와 외부, 공식과 비공식 사이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는 사람일까. 그 질문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분명한 건,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시간들 역시 내 삶을 이루는 중요한 조각이었다는 사실이다. 켜켜이 쌓인 경계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시간은 여전히 내일을 향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