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칭호가 전혀 무겁지 않은 배우 안성기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아직 아까운 나이다.
안성기 배우는 자신의 수많은 출연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한 영화로 '라디오 스타'를 꼽았었다. 그는 라디오 스타가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안성기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목소리가 높지도, 액션이 강하지도, 외모도 평범했지만, 마치 갓 지은 쌀밥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했던.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라디오 스타는 1988년의 가수왕이었으나 17년이 지난 지금 한물간 취급을 받는 가수 최곤과 여전히 최곤이 가수왕이라 믿으며 최곤 곁을 지키고 있는 매니저 박민수의 이야기다.
자신이 스타인 줄 착각하는 가수 최곤의 역을 배우 박중훈이, 스타병을 버리지 못하고 사사건건 말썽만 일으키는 가수를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 역은 안성기가 연기 했다.
폭행 사건으로 합의금 마련이 급해진 왕년의 스타 최곤은 강원도 영월 방송국의 라디오 DJ 자리를 할 수없이 수락한다. 모양 빠지게 시골 방송국 라디오 DJ를 맡게 된 최곤은 성의 없이 제멋대로 방송을 진행하는데, 뜻밖에도 아무렇게나 꾸밈없이 내뱉은 진행이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영화의 절정은 서울 방송국 DJ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 최곤이 생계를 위해 김밥장사를 한다며 떠난 매니저 박민수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찾는 장면이다. 그리운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최곤은 아이가 잃어버린 엄마를 찾듯 박민수를 부른다. "저도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은 박. 민. 수. 형, 왜 안 와?"
종일 김밥을 팔다 파김치가 되어 버스에 탄 매니저는 차 안 라디오를 통해 최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훌쩍이며 자신을 찾는 박중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성기는 팔다 남은 김밥을 계속 입안에 우겨 넣는다.
울음 섞인 박중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김밥을 우물거리는 안성기의 모습 뒤로 1989년 조용필의 히트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가 흐른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렇게 살리라./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녕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오./ 그리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 주오./ 한순간 스쳐가는 그 세월은 내 곁에 머물도록 하여 주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는 사랑은 영원히 남아 언제나 내 곁에"
완벽한 장면이었다. 아이처럼 울먹이며 자신을 애타게 찾는 가수의 목소리를 버스 라디오에서 들으며 팔다 남은 김밥을 먹던 안성기의 표정은 몇 백, 몇 천 마디의 외침보다 더 많은 울림을 담고 있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다시 돌아 온 매니저가 마침 비 내리는 영월의 방송국 입구에서 가수를 기다린다. 애써 외면하는 박중훈에게 다가간 안성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박중훈의 머리 위에 우산을 펼쳐 비를 막아 준다. 그리고 유명한 라디오 스타의 OST '비와 당신'이 흐른다.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안성기는 그가 아꼈던 작품 라디오스타의 주제곡 가사처럼 오랫동안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물도 없이 김밥을 먹던 그 아름다운 표정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