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식구 물어뜯기

2025.12.30 15:05:09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괴산군 청천면의 '암서재(巖書齋)'는 서인(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이 제자를 양성했던 곳이다. 송시열은 화양동의 빼어난 경관에 반해 화양동 제2계곡인 운영담에 다섯 칸 화양계당을 마련했다가 1666년 제4계곡인 금사담의 암서재로 거처를 옮겼다.

숙종 15년인 1689년, 83세의 송시열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는다. 죽음을 앞둔 그는 제자 권상하에게 사모하는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과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사당을 화양동에 세울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스승의 유언에 따라 권상하 등은 명나라를 향해 북향으로 배치한 사당을 세우고 황제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글자를 따 만동묘라 이름 붙였다.

암서재 근처에는 환장사(煥章寺)라는 절집이 있었다. 1655년 혜일선사가 창건한 사찰은 대한제국 말기 항일의병의 본거지로 찍혀 왜병들의 방화로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된 비운의 절이다.

만동묘가 세워진 뒤, 환장사의 스님들은 만동묘 근처를 지나는 선비의 태도를 보며 그 사람이 어떤 당파에 속해 있는 지를 어림짐작했다고 한다.

만동묘를 무심히 둘러보고 지나는 사람은 진보파인 남인(南人), 만동묘를 우러르며 공손히 몸을 굽히는 사람은 보수파인 노론(老論), 만동묘는 본체만체하고 화양구곡을 감상한 뒤 절에 들러 생트집이나 잡는 사람은 혁신파인 소론(少論)이라는 식이었다.

조선의 당쟁과 당파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확대됐다. 동인과 서인에서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으로 파가 갈려 당파가 다르면 부모 죽인 원수를 대하듯 철저히 반목했는데, 다른 당파와 내통한다는 의심을 받았을 수 있어 반대파의 혼사는 물론 조문조차 하지 않았다. 주거지도 같은 당파끼리 모여 살았으며 의복과 부인의 머리모양까지 달리했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을 전격 제명했다. 정권에 부역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이혜훈 전 의원의 협잡은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로 결코 묵과할 수 없으며,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국민의힘의 격앙된 주장이다.

다른 당파와 내통한 자를 가차 없이 쳐낸 조선시대 파당적 다툼을 방불케 하는 국민의힘의 제명조치에 대해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는 "누군가 등을 돌렸다면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지, 떠난 사람을 저주해서 무엇을 얻겠느냐"며 느긋이 부아를 돋우고 있다.

'탕평'을 내세운 대통령의 이혜훈 장관 발탁에 대해 국민의힘은 정치적 술수라며 도둑질이라는 거친 표현을 쓰고 있다. 이혜훈의 발탁이 파격이긴 하다. 현직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며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당을 내란세력이라고 공격했던 이혜훈이니.

그렇다면 이준석의 비아냥거림대로 이혜훈은 정말 등을 돌린 것인가. 무엇이 국민을 위하고 나라에 보탬이 되는 행동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이중환은 '택리지'를 통해 이렇게 걱정했다

"나랏일을 한다며 자신의 이익만 도모했지 실상 나랏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관직을 매우 가볍게 여기고, 관청을 주막처럼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국민의 심판을 운운하며 이혜훈을 서둘러 제명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