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돌아왔다. 읍내리에 살고계시는 오라범에게서 전화가왔다. 시장에서 배추를 팔아야하는데 도와달라하신다. 농사가 잘됐다면서 웃으셨다. 소중하게 키운 농산물을 시장마다 다니면서 팔아오신지 오랜세월이 흘렀다. 나는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배추파는 일을 돕기로했다.
음성 장날이다. 새벽공기가 싸늘하게 볼을스친다. 손가락끝 마디마디가 얼어붙는 듯 시렵다. 재래시장에 도착했다. 시장바닥은 벌써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쩍하다. 시장좌판에 노랗게 속이 꽉찬 배추와 무를 나란히 진열한다. 다른 상인들도 판매 경쟁에 서로 밀리지 않으려 일목정연하게·물건을 정리해 놓았다. 이른 아침부터 해찰 없는·마음으로 앉아서 판매에 정성을 다하고있다. 기후탓으로 농사가 잘안되어서인지 시장에 무 배추의 양이 작년보다 훨씬 줄었다.
나는 오라범과함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입구에 자리를 잡고 트럭에서 배추를 내린다. 배추를 잔뜩 쌓아놓은 곳 한쪽에 박스를 찢어 만든 깔개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묻는다
"배추 얼마예요?" 그 한마디에 희망을 싣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무거운 무와 배추를 봉지에 담으려면 허리가 휘청거린다.
"아이고 비싸네" 고개를 저으며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럴때마다 내 자존감이 우거지 배춧잎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싸게 달라 떼쓰는 어머니들도 계시고 어떤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배추가 속이 노랗게 꽉 찼네"하면서 고른다.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다시 따뜻해진다. 나는 흙 묻은 손을 소맷자락에 쓱 닦는다.
시장 저쪽에서는 장바구니를 끄는 바퀴소리가 들리고 자전거가 지나가며 "비켜유"하는소리도 들린다. 햇살이 점점 시장 안쪽으로 들어오면 길바닥의 그림자도 길게 늘어지고, 웃으면서 흥정하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오라범이 옆 좌판 상인들에게 외친다.
"오늘도 많이 팔았어유? 막걸리 한 잔 합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한낮 뜨겁던 소리들도 숨을고르 듯 잦아들고 배추앞에 웅크렸던 허리를 펴고 남은것은 트럭에 싣는다
"하나요 둘이요" 오라범이 소리치듯 배추를 세어올린다. 나는 허리와 다리도 아프지만 마음은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괴산장날이다. 9시경부터 무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줄을서는 어머니들께 내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1개 덤을 더 드릴께유~더 오래 기다리신분에게는 2개 덤이여유"
깔깔깔 웃는 소리에 다시 줄을 서며 물려드는 손님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값을 알아보면서 비교해보는 어머니들은 밭에서 직접 뽑아와서 싱싱하기도하지만, 값이 저렴하다면서 내 앞에서 서성거리신다. 배추 1포기 가장 좋은 상품은 4천원씩 2시간여만에 다 팔렸다. 나머지는 떨이로 싸게 줘버렸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호르라기를 불면서 "뻥이요"라고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귀를 막는다
"다시 뻥이요!" 갑작스런 큰 목소리에 사람들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그곳에선 벌써 하얀 김이 모락모락 퍼졌다. 어린시절 귀 막고 도망치던 생각이 떠올랐다. 고소한 강냉이 팝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오라범이 사다준 뻥튀기가 아주 맛나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다른곳으로 돌린다. 찹쌀 호떡 노점앞에 사람들이 줄을섰다. 오라범이 뜨끈한거 2개를 사오셨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그러나 다먹지도 못하고 손님들이 몰려들어서 팽게치고 배추를 팔았다. 한가득 트럭의 배추가 팔려나갔다. 허리펼 틈도없다.
"후~유" 힘든만큼 보람도 크게 느껴졌다.
해가 기울어질때 쯤 아픈다리를 털어내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11월 9일 장호원 장날이다. 손님이 한가한 틈으로 다른곳 장구경에 나섰다. 약도라지 조청으로 고왔다는 도라지 조청을 구입한다. 내가 기관지가 약해서 천식에 좋을것같아서다. 첫마수이니 만원 깎아준다는 주인의 말이 정감있게 들렸다.
"하루에 세번 반숟가락씩 잡수면 기침에도 좋고 목소리에도 좋아유"
나는 속으로 중얼인다. "맞아 노래 모임에서 버스킹 나가는데 먹으면 좋것넹"
다시 괴산 장날이 돌아왔다. 첫손님이 배추 30포기를 사갔다. 나는 속으로 배추 숫자를 세었다
"하나요 둘이요 셋 넷 다섯이요"
연이어 무 생강도 팔렸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오라범이 부른다. 직접 담그신 찹쌀 막걸리를 권하면서 내게 한는 말~
"동생 힘들지? 다 그렇게 사는겨"
그 말 한마디가 이곳에서만 느껴지는 정의 흐름같아서 마음이 다시 따뜻해진다. 해가 땅끝에 닿을 무렵이면 시장의 긴 그림자들이 겹겹히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