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유괴를 다룬 방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된 뒤 영화 속 범죄와 유사한 사건이 울산에서 발생했었다. 피해 어린이의 가족은 "아들이 유괴된 뒤 유괴범이 계속 협박전화를 했는데 영화 '그놈 목소리'와 모든 상황이 흡사했다"며 치를 떨었다.
유괴범의 목소리와 음성 톤이 영화 속 범인 목소리처럼 들렸다는 가족의 증언대로 범인은 영화 '그놈 목소리' 수법을 모방해 울산시 한 식당 앞에서 부근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어린이를 납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괴범은 어린이 가족에게 "경찰에 알리지 말고 현금 천오백만 원을 준비해 시청 앞으로 나오라"는 협박전화를 10여 차례 걸었다고 한다. 다행히 범인은 공중전화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경찰에 의해 13시간 만에 검거됐다.
모방범죄 논란이 시끄러웠던 영화는 '그놈 목소리'만이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폭력범죄 흉내를 부추긴 '친구', 유사한 범죄를 계속 발생시켰던 '주유소 습격 사건' 등도 모방범죄에 한몫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모방범죄에 대비하는 당국의 예방조치가 철저하다. 지난 201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커' 개봉을 앞두고 미 육군과 경찰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주인공 '조커'의 악행을 흉내 낸 모방범죄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조커는 1940년 영화 배트맨에 처음 등장한 희대의 빌런이다. 화학 약품에 빠져 광대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 악당은 슈퍼영웅 배트맨의 적으로 설정돼 있다.
미 육군은 군 지휘관들에게 '조커' 개봉에 따른 폭력사태 가능성을 경고했다. 경찰도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경계를 강화하겠다'며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극장은 조커가 상영되는 기간 동안 극장 내 모든 코스튬과 마스크, 장난감 무기 등의 반입을 금지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만큼 모방범죄 대비에 예민했던 이유는 2012년 발생한 콜로라도주 '오로라극장 총기참사' 때문이다.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상영 중인 오로라 극장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조커"라고 소리치며 무차별 총기를 난사했다. 이 사건으로 12명이 숨지고 70명이 다쳤다.
2021년 핼러윈 데이에 일본에서도 조커 복장의 20대 남성이 칼부림과 방화를 저지르는 참사가 일어났다. 범인은 도쿄 지하철 객실에 기름을 뿌려 방화한 뒤 칼을 휘둘러 17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영화 배트맨의 '조커'가 입었던 녹색 셔츠에 파란색 정장과 보라색 코트 차림을 한 용의자는 범행 직후 객실에 앉아 유유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단다.
모방범죄는 다른 범죄자의 범죄를 모방해서 그대로 재현하는 범죄다. 모방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의 상당수가 학습을 통해 얻은 간접경험 요소들을 참고로 하는데, 다른 범죄자의 수법을 모방하거나 보완하여 범죄 행위를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범죄행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도매체들이 범죄관련 상세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강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질의한 '책갈피 달러' 밀반출 지적으로 인해 상상도 못했던 외화반출 범죄수법을 전 국민이 알게 됐다.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져 걱정스럽다"는 이학재 사장의 걱정은 허투루 넘길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따라하고 싶어지는 절묘한 범행수법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