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년

2025.12.11 14:47:15

정익현

건축사

12월은 춥다. 대한민국의 12월은 날씨에 더해서 각종 사건으로 더 을씨년스러웠다. 12월에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을 본다. 1971년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국가보위법 제정, 72년 이른바 '유신 헌법'으로 장기집권 발판 마련, 79년 '12,12 사태'로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 80년 '언론 기본법' 공포로 언론 통제, 2016년 박근혜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등이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사람들은 뜬금없는 계엄에 처음에는 가짜 뉴스 인 줄 알았다. 영국의 저명한 매체 가디언지는 사설에서 '기괴하고 끔찍한 시도'라고 했다. 과거사 청산(過去事 淸算)이 필요한 것이 단죄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계엄을 막은 것은 국민이었다. 계엄 포고령의 한 글자 한 글자는 국민의 마음을 짓눌렀다. 계엄 특별 담화문에는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을 위해서라 했다. 계엄군의 국회 진입은 계엄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도 충격이었다. 더 늦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이 그들을 국회로 뛰어가게 했다.

TV로 생중계된 국회 안팎의 급박한 상황은 아주 비현실적이어서 이것이 우리나라가 맞나 싶었다. 계엄 발동 2시간 30분 만에 국회에 의해 계엄은 해제됐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에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삭제되고 국회의 계엄 해제권이 추가된 결과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새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고, 3대 특검법이 발의 되어 국가를 위태롭게 한 그들은 재판을 받고 있다. 동시에 우리 사회는 분열돼 혼란에 빠졌다. 한 쪽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하고 다른 한쪽은 '이런 상황을 이용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자기 진영 논리에 빠져 이쪽저쪽이 무한 대립하고 있다. 이쪽에서 보면 상대방이 저쪽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내가(이쪽) 저쪽이 된다. <장자(莊子)>에 이런 말이 있다. '이것은 또한 저것이고(是亦彼也), 저것은 또한 이것이다(彼亦是也)' 나의 '이것'이 타자의 관점에서는 '저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인데 갈 길은 멀다. 불확실성이 제거되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 계엄 논리에서 표출된 각종 '음모론'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 국민은 피곤하다. 계엄은 끝났어도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세상에 그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재판이 더디게 진행되고, 근엄해야 할 법정은 희화화(戱畵化) 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개혁은 더뎌도, 빨라도 암초를 만나 좌초하기 쉽다.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 양극화, 특정 집단의 기득권 강세, 불안한 부동산 시장은 위험 요소이다. 이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학교에서는 '민주 시민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불신과 혐오가 가져온 사회 분열을 해소해야 한다.

지난 12월 3일, 꼭 1년이 지나 국민의 힘 의원 전체의 20%가 조금 넘는 25명이 '계엄 사과'를 했고 이틀 뒤 12월 5일,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계엄이 위헌'이라 했다. 법을 다루는 법관들이 늦어도 한참 늦은 지금에 와서 뒷북을 치고 있다.

'80년 5월이 12월의 우리를 구했고, 2024년 12월의 우리가 또 미래의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당시 국회로 달려갔던 어느 대학생의 말은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유산 같은 말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불안과 불신은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국가는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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