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 감물면의 오창리(五倉里)는 본래 괴산군 동하면(東下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간리(五間里) 일부와 유창리(有倉里)를 병합하여 '오창리'라 하여 감물면에 편입되었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도 '오창(梧倉)'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본래 미호강 북쪽 바깥이 되므로 '북강외일하면(北江外一下面)'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근부곡(梧根部曲)'과 '창리(倉里)'의 이름을 따서 오창(梧倉)이라는 지명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지명에서 '창(倉)'이라는 지명 요소는 대부분 창고가 있던 지역을 말한다. 괴산군 괴산읍 사창리(四倉里)와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社倉里), 청주시 흥덕구 사창(司倉) 등도 예전에 '사창(社倉)'이 있던 마을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에 대비한 비축과 빈민 구제를 위하여 환곡제(還穀制)가 실시되었는데 적립한 곡식을 유용하거나 횡령하는 등 부정부패가 심하여 시대별로 의창(義倉), 상평창(常平倉), 사창(社倉), 사환미(社還米) 등 여러 제도가 다양하게 운영되면서 각지에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많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군역이 마을 단위의 총액제로 운영됨에 따라 유망(流亡) 가구의 부담까지 주위 사람들이 책임져야 했으므로 촌락민들이 그 부담을 공동으로 지기 위해 대동계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공동기금으로 고리대를 하거나 땅을 사서 소작을 주고 그 수익으로 군포를 부담하거나 그 밖의 마을 주민들의 상호 부조와 공동이익을 위해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했다. 그래서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 가구가 같게 또는 차등을 두어 현물이나 금전을 모아서 공유재산을 형성해 왔는데 한일합방 이후 화폐가 널리 사용되면서 사환미 조례를 폐지하고 사환미를 부락의 기본 재산으로 전환시키게 되면서 그 기금과 기능이 대동계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시도의 지명을 살펴보면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社倉里),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史倉里), 충남 태안군 이원면 사창리(社倉里), 전북 고창군 부안면 사창리(社倉里),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社倉里), 전남 장성군 삼계면 사창리(社倉里), 경남 창녕군 부곡면 사창리(社倉里) 등 모두가 사창(社倉)이라는 창고가 있던 마을인 것이다.
창고가 있던 마을명을 '창리(倉里)'라 한 지역은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창리(倉里)와 보은군 내북면 창리를 비롯하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충남 당진시 우강면, 충남 서산시 부석면 등에 나타난다.
그러면 감물면 오창리의 유창(有倉) 마을은 창고와 어떤 관련이 있어서 '창리나 사창'이 아닌 '유창'이라 했을까?
유창 마을은 고려 때부터 조선초까지 사창(社倉)이 아닌 세수 창고(稅收倉庫)가 있다 하여 '세창(稅倉) 또는 세이창(稅伊倉, 世伊倉)'이라 불리어왔다. 단순히 '창고가 있었다'는 의미만을 나타내기 위하여 '유창(有倉)'이라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지명에서 '유(有)'가 지명 요소로 쓰이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유창(有倉)'이라 표기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창(倉)'을 지명으로 사용하고자 하는데 지명은 두 글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창고라는 의미를 중첩하여 '유창(庾倉, 곳집 유, 곳집 창)'이라 표기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庾)'라는 한자가 많이 사용하는 글자가 아니어서 일반 주민들이 알아보기가 어려우므로 쉬운 글자로 바꾸어 '유창(有倉)'이라 썼다가 지명에 '유(有)'를 쓰는 것이 불합리하여 '유창(柳倉)'이라 바꾸어 쓰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괴산읍 사창리가 백성들의 구휼을 목적으로 하는 사창(社倉)이 있던 곳이라면 이곳 오창리의 창고는 지형적으로 달천강변에 위치하는 마을이기에 조세로 거둬들인 곡식을 저장하였다가 목도나루를 통하여 조정으로 옮기는 세창(稅倉)을 설치했던 곳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