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회사법인 ㈜신선 박준미 대표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네가 먹는 밥보다 더 좋은 쌀로 술을 빚어라."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청주신선주. 570여년 간 19대째 함양박씨 종가집 가양주를 계승 발전해 맥을 잇고 있는 박준미(58) 대표(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8호)가 전통주를 만들며 지키는 원칙이다.
건축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가업이 아니라 '사명'이었다.
박 대표는 2018년 농업회사법인 ㈜신선을 설립하고 이듬해 지역 특산주로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박 대표의 신선주 복원 과정은 험난했다. 남겨진 기록에는 정확한 레시피가 없었다고 한다. 하나의 술을 연구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렸고, 실패하면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박준미 대표는 "처음에는 아무리 해도 술맛이 안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밀 농사를 지어서 향하고 맛을 안 섞고 누룩하고 쌀, 물만 해도 충분히 향이 난다"며 "야생 미생물도 바람타고 꽃 향기, 나무 향기와 함께 흡착된다. 이걸 연구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박 대표에게는 절대 깨지 않는 원칙이 있다. 신선주는 100일 숙성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 출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업 초기 청와대에서 명절 선물로 천만 원 가까운 주문이 들어왔다고 한다. 1년 매출이 100만 원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출고일이 100일 숙성일보다 며칠 앞섰다.
박 대표는 "정말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약속도 있고,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 경계가 무너지면 안되겠구나 싶어 결국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비슷한 제안이 몇 번 있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때 한 번 딱 자르고 나니까 마음에 선이 그어졌다. 그 선택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준비에 10년, 시작하고도 10년은 걸린다"는 그의 말처럼, 2010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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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신선주를 단순한 주류가 아닌 문화 콘텐츠로 접근하고 있다.
전통주를 만들던 박 대표가 술과 함께 먹는 곁들임 음식으로 시각을 확장하게 된 것은 일본에 100년 넘은 양조장들을 방문하면서다.
문화교류로 방문하게 된 일본 니가타현 양조장에서는 술 부산물로 만든 비누, 쿠키부터 지게미(탁주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까지 판매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영감을 받은 박 대표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손님 접대용으로 만들던 다식, 약과 등의 기억을 떠올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페어링 메뉴를 개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디저트들은 올해 11월 APEC 정상회담에서 전 세계 정상 40여 명이 맛보게 됐다.
신선주를 활용한 K-디저트로, 단순한 술이 아닌 우리 발효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신선주를 바탕으로 한 술빵과 단팥빵 등 다양한 음식들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위치한 매장에서도 맛볼 수 있다.
그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진짜 대우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한다.
테이블 세팅부터 소품까지 신경 쓰고, 각 음식마다 스토리를 담는다. 어느 지역에서 누가 농사지은 재료인지까지 소개한다.
박 대표는 "1~2천 원 더 주고 좋은 것 먹을 수 있다면, 결국은 선택하게 된다.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아야 전통도 살아남을 수 있다"며 "프리미엄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문화가 가치 있게 올라가려면 바닥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확언했다.
박 대표의 경영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상생'이다.
박 대표는 "농민들과 도시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하고 싶다"며 "지역 농산물로 술을 만들고, 그 술로 음식과 디저트를 만들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박 대표가 신선주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식문화 역사'를 지켜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집안의 역사이기도 하고 나라의 역사이기도 한 이것을 내가 이어가지 않으면 그냥 끝나게 된다"며 "결을 지켜가며 신선주를 뿌리에 둔 식문화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확장시키고 지켜나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 성지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