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면 아들의 결혼식이다. 한평생이 잠깐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삼 남매 키우느라 정신없이 북적이며 살았는데 어느덧 마지막 혼사다. 그간은 별생각이 없었는데 결혼식이 코앞에 닥치니 마음이 묘하다.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쉬움도 반이다.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던 아들의 자리가 생각보다도 컸었나 보다.
지난 몇 달 행사도 많았고 무엇보다 개인 수필집 내는 일로 심신의 여유가 없었다. 손톱이 길게 자란 줄도 몰랐다. 가뜩이나 검버섯이 핀 데다 손톱까지 길어 더 못생겨 보인다. 그렇다고 밉기만 한 건 아니다. 세 가정을 키워내느라 애쓴 대견한 손이기도 하니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네일샵을 예약했다. 전문가가 손톱을 다듬어주면 보상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손톱 관리를 받기는 처음이다. 호박에 줄 그어서 수박 만들어 달라는 것 같아 민망했지만 부끄럽게 손을 내놓았다. 관리사는 먼저 길어진 손톱부터 깎았다. 그러고는 뿌리 부분에 오일 리무버를 발라 큐티클 라인을 정리했다. 날카로워진 손톱은 줄로 갈아 부드럽게 둥글렸다. 손톱 밑 굳은살과 주변의 거스러미들도 하나하나 제거하며 열 개의 손톱을 차례로 꼼꼼히 다듬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버퍼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후 보습 오일과 손톱보호제를 발라 주었다. 단출하게 정리된 손톱이 마음에 든다. 건강하게 반짝거리는 손톱들로 손 전체가 깔끔해졌다. 내 손톱도 이렇게 예뻐질 수 있구나. 그러고 보니 그동안 무심하게 부려 먹기만 해온 것이 미안해진다. 보석을 붙여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더라도 이런 간단한 관리 정도는 가끔 받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잘려 나온 초승달 모양의 손톱을 본다. 엄밀히 따지면 손톱도 신체의 일부이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손톱을 보면서 아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들은 어려서 몸이 약했다. 그래서 씨름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애면글면 마음을 쏟아야 했다. 딸들 키울 때는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아들 키우면서는 당황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특히 중고등학생 시절에 종종 학교에 불려 가곤 했다. 성향 때문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 하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철 들고부터는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이 되어주었다.
근래 몇 년 동안 아들과 둘이 해외로 자유여행을 다니며 각별한 추억을 쌓았다.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도 그 덕이다. 여행 기간에 운전을 해준 덕분에 자유롭게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들을 다닐 수 있었다. 자유여행이었기에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단둘이 또 여행할 수 있으려나. 제 식구가 생길 테니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좀 더 많이 여행을 다닐 걸 그랬다. 아니다. 사실은 이제까지만도 넘치게 고맙다.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일 것이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마음을 비워야 한다. 괜히 아들에게 집착하는 난감한 시어머니처럼 보일까 조심스럽다.
문득문득 여행하며 받았던 감동들이 고스란히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런 많은 순간에 아들과 함께였다. 작년 겨울에 동유럽 여행 갔을 때, 부다페스트 숙소에 패딩을 두고 왔다가 우여곡절 끝에 국제소포로 돌려받았었다. 며칠 전 그 패딩을 꺼내 입는데 '어부의 요새'로 가는 언덕길이 생각났다. 펑펑 내리는 눈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풍경이 동화 속처럼 예뻤다. 어쩌면 내가 추억하는 한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손톱 모양의 초승달이 보름달로 커가듯, 아들의 둥지도 사랑과 행복으로 점점 온전해지겠지.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또 다른 감동이자 기쁨일 것이다. 언젠가 석정이도 손톱 같은 달을 떠나보내며 끝내지 못한 여행을 추억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