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만 쌓이다

2025.11.23 14:56:39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는 자주 드나들었는데 돌아가신 뒤로는 발길이 뜸했다. 가까이 사는 동생이 드나들기는 했지만 부모님 안 계신 집은 늘 적막하고 남의 집처럼 휑하니 쓸쓸함만 남았다.

어쩌다 가도 잠시 앉았다가 바로 나왔고 예전처럼 형제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눌 기회도 적어졌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 가슴 속에서는 늘 그리운 고향이지만 어머니 돌아가시고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낯선 곳으로 변해가니 아쉽다.

그러던 차에 장남인 남동생이 집수리를 시작했다. 집 옆에 오래된 행랑채인 흙집이 있었고 그곳은 내가 태어나서 살던 곳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옆에다 새로 집을 지었고 흙집은 아버지가 쓰시던 각종 공구와 부엌살림에 필요한 도구, 다른 한 곳은 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썼다. 세 칸짜리 황토로 만든 집인데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이고 내가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살았다. 이후로 50년 넘게 창고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니 벽에 균열이 생기고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남동생은 황토집과 뒤꼍 마당까지 다 밀어낸 후 널찍하게 마당을 만든 뒤 한쪽에 창고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많은 추억이 있던 집이지만 오래된 창고였기에 수리가 필요하기도 했다.

흙집에서 살다가 아버지는 두 번째 집을 지으셨다. 그 집에서 20년쯤 살다가 부엌과 화장실, 광을 현대식으로 수리하고 아버지 환갑잔치를 집에서 했는데 한 달쯤 후에 불이 났다. 마루 앞 봉당을 높이고 설치한 알루미늄 샷시와 안방에 있던 12자 자개장, 새로 산 가전제품 등이 거센 불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불이 무섭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불길은 삼십 분 만에 집 한 채를 다 태우고 재만 남겼다.

망연자실한 부모님은 눈물 마를 새도 없이 신접살림을 차렸던 황토 흙집에서 잠시 생활하며 불이 난 자리에 아버지가 다시 집을 지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아버지는 세 번의 집을 다 직접 지었다. 세 번째 집은 내가 결혼한 이후여서 새로 터를 다지고 동네 아저씨들이 지경 다지기를 하고 고사도 지냈던 광경이 떠오른다.

세 번째 집에서 어머니는 작년까지 30년을 살았고 아버지와 처음 짓고 살았던 흙집은 사라지는 것이다. 흙집을 정리하다 보니 벽장 속에서 오래된 사진들이 나왔다. 불에 타고 남은 사진들을 가위로 오려내고 보관했는데 헌 집 벽장까지는 들추지 않고 살았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사진이다. 부모님의 40대, 50대, 60대 삶의 모습들이 부분 부분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전혀 꺼내 보지 않았기에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한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18년째인데 그동안 아버지를 잊고 산 듯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그리움이 울컥 솟고 엄청 멋진 분이셨구나 하는 감회가 새롭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던 아버지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은 분이셨다. 나이 탓인지 세월 탓인지 점점 그리움만 쌓여간다. 양복과 한복을 입고 나란히 찍은 부모님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움에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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