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의 저 유명한 소설 『이방인(異邦人)』을 보면 주인공 뫼르쏘가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바닷가 모래밭에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살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너무나 강렬한 태양 때문에 아무런 자의적(自意的) 의도 없이 순간적으로 한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학적으로 본다면,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느니 「비극적 휴머니즘」이라는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또 뫼르쏘가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은, 그 무렵의 여러 가지 상황과 그로 인한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뫼르쏘는 어쨌든 햇볕이 너무 뜨겁고, 그로 인해 짜증이 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고도 그는 자신이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는 의식은 별로 없고, 오히려 졸고 있는 것 같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권태감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 비로소 졸고 있는 것 같던 의식이 깨어나서 몸부림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현실을 볼 때 이런 뫼르쏘처럼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순간적으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살인이나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살인이나 유괴, 납치, 성폭행, 사기 등의 범죄들을 저지르고 난 후에도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하거나 무덤덤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다를 바 없다. 각종 비리나 뇌물수수 사건, 음주운전, 불법영업, 기업 비리, 세금 횡령 등으로 구속된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죄책감이나 반성의 빛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변명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격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병들고 시든 영혼, 썩고 타락한 영혼, 각성하지 못하고 졸고 있는 영혼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참을 인(忍)자(字)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참을성이 약해졌다는 뜻도 된다.
때문에 이런 병들고 시든 영혼, 썩고 타락한 영혼, 각성하지 못하고 졸고 있는 영혼에 맑고 깨끗한 새 바람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병든 영혼이 치유되고, 부조리하고 모순된 우리 사회가 정화되며, 마비된 양심이 회복된다.
그런데 문학은 이런 병든 영혼과 병든 사회의 병적인 요소들을 제거해내는 메스(mes)요, 치유시켜 주는 치료제와도 같은 것이다. 문학은 단순히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병든 영혼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부조리한 세상을 적극적으로 개혁시키는 실제적 힘인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 더욱 필요하고도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문학 자체가 그것이 더욱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모순된 이율배반적인 현실, 인간과 문학 간의 거리, 이것이 우리를 슬프고 안타깝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