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해서 처벌받는 법

2025.11.18 15:47:55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 느낌이 한방에 오는 정의로운 이름이다. 그런데 2018년 NGO 단체로 설립된 이 단체의 웹사이트는 대한민국의 불법 사이트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대법원에서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위반 중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성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이트의 본래 명칭은 배드 파더스(bad fathers)였다. 그래서 배드 파더스란 명칭이 더 익숙하다. 이혼한 배우자에게 양육비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여 사적 제재하는 사이트 배드 파더스는 2021년 잠시 운영을 중단했다가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로 이름을 바꿔 다시 활동 중이다.

배드 파더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인가 싶지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엄마들의 신상도 공개되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자 중 남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아빠가 적어서지 특별히 아빠가 무책임해서는 아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아빠들과 엄마들만이 아닌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Kopino)' 아빠들의 신상까지 공개 중인데, 사이트 운영자는 한 코피노 맘의 억장 무너지는 사연을 알게 된 후 코피노 아빠들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아이를 낳은 후 곧 돌아오겠다며 떠난 한국인 아이 아빠는 자신의 주소를 필리핀 아이 엄마에게 남겼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적어 준 주소가 'Geugeol Mitni(그걸 믿니) 18, Korea'였단다. 짐승만도 못한 애비다.

자신의 신상이 까발려지자 분노한 배드 파파들로부터 사이트 운영자는 사실적시명예훼손으로 총 29건의 고소를 당했는데, 지난해 1월 대법원은 벌금 100만원의 선고 유예를 내린 항소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현행법상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규정이다. 내가 뱉은 말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진실이라 해도 상대방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소를 제기한다면 죄가 성립된다는 것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형법 제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피해자가 이 조항으로 역 고소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들이 있었다.

배드 파더스에 신상이 올라와 가장 망신을 당한 사람이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동성이다. 현역 시절 쇼트트랙 스타 플레이어였던 그는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생활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2018년 이혼한 후 두 자녀에게 약정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자 전 부인은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진행했고, '배드 파더스'는 김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최근 검찰은 김씨의 '양육비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법률 위반사건'에 대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자녀들이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본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4개월을 구형했다.

공익적 목적의 폭로를 막는 악법이란 여론이 이어지고 있는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비방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등 일부 부작용도 있겠지만 법 규정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언로를 막는 꼴이라면 폐지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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