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취약함에 열린 사회

2025.11.10 14:25:26

한영현

세명대학교 교수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40대 사망률 1위가 처음으로 '자살'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사실 청소년과 청년, 노년층의 자살률은 그동안 많은 기사와 보도를 통해 자주 접했기 때문인지 심각성과는 상관 없이 큰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40대의 자살률 보도는 그렇지 않았다.

40대는 IMF 체제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세대이자 현재 한국 사회의 척추 역할을 하면서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는 세대이다. 이들은 베이비 부머 세대인 부모로부터 성공과 안정에 대한 욕망을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받고 성장했으며 1990년대 세계화와 경제적 풍요 속에서 개인주의와 자율성을 내면화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따라서 현실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이기도 하고 공동체 의식과 개인주의를 함께 내면화한 세대이기도 하다.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응팔'(<응답하라 1998>)과 '응사'(<응답하라 1994>)에서 그려낸 낭만적 주인공들이기도 한 이들이 지금은 삶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절망적 주인공들이 되어 가고 있다.

2025년 현재 국내외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정과 일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40대에게 주어진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 세대는 대표적 취약 계층으로 인식되는 청년층과 노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서비스 등에 밀려 지금까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 사이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책임과 윤리를 다하며 살아온 40대는 어느 순간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얼마 전 연구실에서 한 학생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상담을 요청한 학생은 대학 생활에서 경험하게 된 사회적 관계에서 느낀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토로했다. 새로운 사회에 발을 디딘 만큼 당연히 그러한 고민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학생이 느끼는 정서적인 상처와 힘겨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느낀 것은 근본적으로 '취약성'을 '약함'을 '단점'으로 인식하는 일상적 분위기가 우리 주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지닌 정서적 취약함과 힘겨움이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는 않는지 눈치를 보고 고민하도록 하는 집단과 사회는 근본적으로 건강하지 않다.

그러나 결점 없는 완벽성과 긍정성을 내면화할 것을 은근히 강조하고 성공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개인적 특성과 정서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곤 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언제든 병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척추로 기능해 온 핵심 세대 또한 당연히 오랫동안 견뎌온 삶의 무게로 인해 지치고 병들 수 있다.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정서적 문제를 호소하는 개인들이 증가하다 보니 많은 시설과 기관에서 이와 관련된 개선 프로그램이나 상담 창구를 마련하는 걸 흔히 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노력도 중요하나 누구나 일상에서 자신의 정서적 취약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함께 조성될 때야말로 모든 세대와 구성원들의 정서적 안정과 다양성이 비로소 꽃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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