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배려

2025.11.06 16:29:52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차한 내 차 앞에 승용차 두 대도 멈춰 섰다. 회색 도로 바닥엔 두 개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직진과 우회전 동시 차선이다. 잠시 후 초록색 불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앞차가 우측 방향 지시등을 켰다. 순간 앞차 운전자의 사려가 내 안에 온기로 자리했다.

방향 지시등을 켜는 것은 차의 진행 방향을 알리는 사인이다. 운전자들의 약속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방향지시등을 켜야 하는 시점에서 잠시 망설여질 때가 있다. 우회전 직전에 다른 차 뒤에서 신호에 걸릴 때이다.

우리 집 앞 도로는 편도 2차선이다. 아파트 인근엔 마트를 비롯한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저녁 무렵 서쪽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파트를 향해 직진하는 차와 음식점이 많은 상가 쪽으로 우회전하는 차량이 뒤섞여 도로가 혼잡하다. 차선 변경이 여의치 않을 때면 직진과 우회전이 모두 가능한 바깥 차선으로 주행할 때가 있다. 300여m 전방 우측에 아파트 정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호에 걸려 차가 선두에서 멈추게 되면, 백미러를 통해 뒤에 있는 차를 먼저 살피게 된다. 뒤차에서 우측 붉은빛이 깜박거리면, 내가 차량의 흐름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미리 자신의 진행 방향을 알려 주는 사인이 당연한 데, 비켜줘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난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우리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순간 50가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의견이 일치할 때, 내적인 자유로움을 느낄 때,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목표를 달성했을 때,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볼 때, 울림을 주는 시어와 문장을 마주할 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을 때, 타인의 선행을 목격할 때, 재치 있는 유머가 미소 짓게 할 때, 좋은 음악을 들을 때,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 이른 봄 연둣빛 새싹이 얼굴을 내밀 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 기다리던 첫눈이 펄펄 내릴 때, 여행지에서 훈훈한 인정을 느낄 때, 고통을 나누고 공감하는 위로에서 진정성이 느껴질 때, 힘든 시기를 극복한 이(가족, 친구, 이웃 등)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일 때 등

마치 게임을 하듯 두서없이 열거해 보니, 미처 생각지 못한 특이점이 보였다. 우리 마음에 반짝이는 빛이 들어오는 순간들, 기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무척 포괄적이라는 것이었다. 자신과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부터 시작된 기쁨의 순간들이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이어지고, 이웃과 타인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면부지인 누군가의 선행과 미담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이 환해질 때가 있는 것이다. 마음에 윤기를 더하고 행복감을 들이는 생각과 행위가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지극히 사소한 배려, 다정한 말 한마디의 여운이 우리 마음을 얼마나 윤기 나게 하는지를….

잠시 깜박이는 불빛에 담긴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내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순간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