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를 계기로 엔비디아는 한국에 그래픽처리장치 블랙웰(GPU) 26만 장을 공급하기로 결정하였다. GPU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연구와 개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현재 국내에 5만개 미만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우리나라 AI 역사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도입될 26만장의 GPU중 약 5만 장은 공공부문에, 약 21만 장은 민간 부문(삼성, SK, 현대차, 네이버 클라우드)에 배분될 예정이다. 정부는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과 AI 모델 개발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며, 민간 부문은 회사별 특성에 맞추어 '클라우드', 'AI 팩토리' 구축 등 핵심 기술에 사용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대한민국 AI 주권 확보를 위한 역사적 전진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쾌거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급 예정인 엔비디아의 블랙웰의 열 설계 전력은 1㎾이며, 26만 장을 고려하면 최소 260,000㎾라는 산술적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실제 전력소모량이 아니므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CPU, 메모리, 네트워킹 장비 그리고 전력 변환 손실까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데이터 센터를 운영한다면 냉각, 조명, 배전 손실을 감안한 전력 사용 효율(Power Usage Effectiveness, PUE)까지 고려해야 한다.
엔비디아에서 제공하는 DGX B200을 기준으로 전력 사용량을 어림잡아 추정할 경우, 약 1,79㎾의 전력을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6만장의 GPU를 활용할 경우, 약 465,400㎾의 전력을 사용하며, 국내 데이터 센터의 PUE 평균값인 1.76을 적용하면 약 819MW의 전력을 소모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치가 제시하는 실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해당 GPU를 사용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1,400MW급)는 약 0.6기, LNG 복합화력 발전소(500MW~1,000MW급)는 약 2개, 태양광 발전소(1MW급)는 수백 개 이상 필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결국, 막대한 규모의 신규 전력 수요는 기존의 전력체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를 제시한다.
따라서 'AI 주권' 확보라는 역사적 전진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국가적 대책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간이다. GPU 도입은 당장 내년부터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발전 용량과 이를 수용할 송배전망을 구축하는 데는 수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린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조차 "GPU를 공급하기 전에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으면, 어렵게 확보한 26만 개의 GPU는 고철이 될 수도 있다.
결국 'AI 주권'의 성패는 전력망에 달려있다. GPU 도입 일정과 전력 인프라 구축 사이의 시차를 메울 현실적인 로드맵이 절실하다. 지금 당장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 이 신규 수요를 반영하고, 전력을 공급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AI 강국'의 청사진은 전력 부족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