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 벌을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 면화를 재배하기 위한 농약과 물, 염색을 위한 화학약품, 운송을 위한 에너지, 그리고 유행이 바뀌면 버려지는 순간까지. 옷의 생에 전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숨어 있다. 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그 어떤 산업보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지만, 낭비의 속도 또한 빠르다. 윤리적 패션이 꾸준히 논의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패션의 환경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은 과잉생산과 폐기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AI가 진정으로 패션의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AI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없애기보다는, 그 문제를 '덜 나쁘게 만들 수 있는 도구'에 가깝다.
AI의 가장 큰 역할은 낭비를 줄이는 것이다.
브랜드들은 이미 판매 테이터를 분석해 시즌별 수요를 예측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고객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함으로써 불필요한 반품과 재고를 최소화한다.
생산 단계에서는 3D 시뮬레이션 프로그램(CLO3D, Browzwear 등)을 통해 물리적 샘플 없이 디자인을 완성한다. 이는 원단 낭비, 시제품 운송, 염색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크게 줄인다.
이제는 AI가 옷의 끝자락에서도 역할을 시작했다.
올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6년간 국고 175억 원을 포함한 총 250억 원을 투입해 '폐의류 자동 분류 및 물질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AI와 레이저 유도 플라스마 분광법을 이용해 폐의류를 소재별로 자동 분류하고, 다시 원료로 되돌려 새 옷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른바 '물질 재활용'이다. 물질 재활용은 폐기물을 물리적으로 가공해 다시 원료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섬유가 단일 소재인지, 혼방 섬유인지 정확히 구분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분류하고 있어 효율이 낮았다. AI가 이 과정을 자동화하면, 재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옷을 버리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이 올해 4월에 발표한 '폐의류 국내 재활용 체계 구축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80&가 헌옷 수거함을 민간업체에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지자체가 수거량이나 처리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폐의류 발생량은 폐기물 통계로만 추정될 뿐이다. 기후부에 따르면 생활폐기물 중 폐셤유는 2023년 기준 57만8천 톤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가정에서 버려진 옷만 포함된 수치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용 폐섬유까지 포함하면, 한국환경연구원은 국내 폐의류·폐섬유 발생량을 약 80만 톤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일반쓰레기와 함꼐 버려지고, 재사용되는 바율은 고작 2%에 불과하다. 물질 재활용 비율은 4.7%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이 5.9%에 그친다.
나머지는 대부분 수출된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중고의류 수출량이 29만5천 톤으로 세계 5위이다. 수거된 헌옷의 약 80%가 개발도상국으로 향한다. 그중 상당수는 말레이시아나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다른 나라로 재판매되는데, 최종적으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린피스는 이렇게 수출된 중고의류의 30%가 불법 폐기된다고 추정한다. 결국 한국에서 버린 옷이 다른 나라의 쓰레기산으로 옮겨가는 셈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정부의 AI 기술 투자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이다.
AI가 폐의류의 소재를 구분하고, 순환 과정을 데이터로 추적할 수 있게 된다면 '보이지 않던 낭비'를 드러낼 수 있다. 기술은 문제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낭비는 죄책감도, 변화의 의지도 불러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문제의 근본은 여전히 '과잉생산'과 '과소비'이다. AI는 효율을 높이지만, 그 효율이 생산 확대나 소비 자극에 사용된다면 결국 탄소는 더 늘어난다. AI가 진정으로 지속가능성을 이끌기 위해션, 기술의 목적이 '더 많이'가 아니라 '덜 낭비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디에, 어떤 철학으로 사용하는가다. AI는 패션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도구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선택과 태도다. 기술이 인간의 윤리적 감수성과 결합할 때, 그때 비로소 패션은 조금 덜 낭비되고 조금 더 지속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