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년 전, 필자는 C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재학 중이었다. 그 당시 한국화 실기 담당이셨던 H교수님이 우리들에게 한채회(韓彩會)라는 채색화가들의 전시회 도록을 나눠주신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지만 그 도록에는 김태신(1922~2014)이라는 직지사 스님이 채색화로 그린 산수화작품이 있었다. H교수님은 김태신이라는 작가는 일엽스님(1896~1971)의 아들이며, 일본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라고 간단히 소개해 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태신 작가의 작품세계보다는 출생에 대한 비밀과 어떻게 스님이 작품활동을 할까· 라는 궁금증을 간직한 채 40년이 흘렀다.
2025년 9월, 보리 작가로 유명한 P작가는 필자의 책 '이동우의 그림 이야기'를 재밌게 읽으셨다고 하시며,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라훌라의 사모곡'이라는 책을 빌려 주셨다. 이 책은 상·하권으로 돼 있는 김태신 작가의 자서전이었다. 김태신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를 사랑하다,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여인이 자살하는 등 애절한 사랑 얘기는 단숨에 책을 독파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책 제목에 들어있는 '라훌라'는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에 태어난 아들이다. 라훌라는 '애물(碍物)'이라는 뜻의 범어(梵語)이기도 하다. 석가모니가 출가해 수행할 때 아들이 방해가 된다 해 이런 이름이 전해진다고 한다. 일엽에게 있어 김태신은 애물단지(라훌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 제목을 '라훌라(김태신)의 사모곡(思母曲)'이라 붙인 것 같다.
김태신은 일본 도쿄에서 일본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여성운동가로 일본에 유학중이었던 김은주(일엽)와 일본인 대학생 오타 세이조 사이에서 태어난 오타 마사오이다. 오타 세이조 집안은 조부가 은행 총재를 할 정도로 명문가였지만, 식민지에서 유학 온 여성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시대를 앞서가던 신여성 일엽은 불가에 귀의하고, 오타 세이조는 먼 발치에서 일엽만을 지켜보며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 이들은 수덕사에서 단 한 번 눈물로 재회했다고 하는데, 이 모습은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소설의 한 부분을 연상케 한다.
"이튿날, 황금빛 아침 햇살이 부채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차림의 여인은 합장(合掌)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石像)이 돼 있었다."(유주현의 '탈고 안 될 전설')
김태신은 오타 세이조의 한국인 친구 송기수에게 맡겨져 성장한다. 그 후 이당 김은호(1892~1979)에게 그림을 배우게 된다.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본 송기수가 보통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이당 집에 들여보낸 것이다.
또한 친모(일엽)의 친구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그에게 영향을 준다. 수덕사 여승이었던 일엽은 먼길을 찾아온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마라며 차갑게 대하며 절 아래 수덕여관에 있던 친구 나혜석에게 보낸다. 이혼당한 맘의 상처를 달래고 있던 나혜석은, 일엽으로부터 외면당한 김태신을 넉넉한 가슴으로 안아준다.
세월이 흘러 도쿄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미술 교사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일부 한국 화가들의 음해로 그는 조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1970년대 중반까지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광복 후 유산 정리차 월북했다가 억류돼 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김일성 초상화를 그린 일로 본의 아니게 '용공'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이다.
김태신은 일본에서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잘 나가는 작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안 쌓은 기득권과 처자식을 뒤로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불가에 귀의하고 작품 활동도 하는 것으로 자서전의 내용은 끝을 맺는다. 라훌라가 아버지 석가모니를 따라 출가했듯이, 김태신도 어머니 일엽 스님을 따라 68세 나이로 불가에 귀의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필자는 40년 만에 김태신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라훌라의 사모곡'에서 김태신은 모자간의 애절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일엽은 김태신을 끝내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엽 스님의 아들이라 사칭한 사람이 책을 팔고 다닌다고 제자들이 분개할 때 일엽은 "호들갑 떨 것 하나 없다. 김일엽이라는 이름 석 자가 뭐라고· 그 이름 가치가 얼마나 된다더냐· 나를 빙자해 한 사람이 이 힘든 생을 버티고, 한 남자가 장사하고 돈을 벌어 그걸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내가 한 사람을 구제한 것이 아니냐"라고 담담하게 처신했다고 한다. 어쨌든 김태신과 일엽 스님 둘 중에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모자간의 이야기는 탈고 안 될 전설이 된 것이다.